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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함께 했던 외국적 항일투사 시리즈 1- 정률성

출처: 중국국제방송 | 2015-06-17 16:48:26 | 편집: 서위

정률성

   이 사진들은 중국에서 항일혁명운동에 적극 참여한 조선지사(후에 중국적 가입)인 우수한 작곡가 정률성(鄭律成)의 진귀한 역사사진들이다.

   사진은 현재 여순일러감옥유적박물관(旅順日俄監獄遺迹博物館)에 진렬돼 있다.

   기자는 일전에 베이징 팔보산 혁명공묘(北京八寶山革明公墓)에 안치된 정률성 부부의 묘소를 찾았다.

   정률성(1918-1976)은 본명이 정부은(鄭富恩)으로 1914년 조선에서 출생했다.

   1933년,중국에 온 정률성은 중국의 조선 항일단체가 창설한 조선혁명간부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조선인 혁명조직 의열단과 조선민족해방동맹에 가입해 항일활동에 참가했다.

   정률성은 1937년 10월, 연안(延安)에 도착해 선후로 섬북공학(陝北公學)과 연안 노신(魯迅)예술학원에서 학습했다.

   1938년부터 정률성은 중국인민항일군정대학 음악지도와 노신예술학원 성악교원을 역임했다.

   정률성은 1939년 1월,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1942년 8월, 태항산(太行山) 팔로군 본부에서 근무하면서 화북 조선 혁명군정학교 교육장을 맡았다.

   항일전쟁 승리후, 조선혁명군정학교가 폐교교되면서 정률성은 명령을 받고 부대를 따라 조선에 돌아갔다.

   1950년, 정률성은 베이징에 돌아왔으며 중국 국적에 가입했다.

   1976년 12월 7일, 정률성은 뇌출혈로 사망했다.

   정률성은 살아 생전에 수많은 항일 가곡들을 창작했다. 이 가운데 "팔로군 행진곡"은 후에 "중국인민해방군 진행곡"으로 개명되였으며 1988년부터 정식으로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확정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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