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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함께 했던 외국적 항일투사 시리즈 2- 미도리카와 히테코

출처: 중국국제방송국 | 2015-06-18 13:48:22 | 편집: 리상화

미도리카와 히테코와 남편 유인(劉仁)

   1936년, 미도리카와 히테코는 일본의 중국 유학생 유인(劉仁)과 결혼했다. 그는 1937년 4월 중국에 와 상해 세계어협회에서 근무하면서 세계어 간행물 "중국은 노호한다"를 편집하고 구국회 칠군자(救國會七君子)를 석방할것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1938년 6월부터 1940년 여름까지 미도리카와 히테코는 국민당 중앙선전부 국제선전처 대일(對日) 선전과 일어 방송원으로 있으면서 방송을 통해 반파시즘 선전을 진행했다.

   1940년 7월, 미도리카와 히테코는 중국의 일본인 반전쟁 동맹본부 설립대회에서 본부 교육선전부 책임자로 추천됐다. 그는 1944년 하반년 동북민중항일구망총회(東北民衆抗日救亡總會)에 몸담그면서 "반공(反攻)" 간행물 편집을 맡았다.

   항일전쟁승리후 미도리카와 히테코는 동북에 돌아와 동북교육위원회 위원과 동북사회조사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했다.

   1947년 1월 10일, 미도리카와 히테코는 흑룡강성 가목사시(黑龍江省佳木斯市)에서 수술감염으로 별세했다. 사망후 미도리카와 히테코는 현지에 안장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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