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華網韓國語

新華網韓國語 >> 기사 본문

(건군 90주년)항미원조 첫 번째 전투: 온정리 전투(溫井里戰鬪)

  • 크기

  • 인쇄

출처 :  신화망 | 2017-08-15 14:11:22  | 편집 :  리상화

[신화망 베이징 8월 15일] (천후이(陳輝), 마오쥔(毛俊) 기자) 중국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 기념을 앞두고 기자는 베이징 시산(西山) 산기슭에 사는 전 베이징군구 정치위원(政委) 류전화(劉振華) 상장(上將)을 방문해 항미원조전쟁의 첫 번째 전투를 취재했다.

당시 지원군 제40군 118사단 정치부 주임을 맡고 있던 류전화는 28세였다. 그는 1950년 10월 19일, 118사단은 출정 궐기대회를 열고, 그날 저녁 안둥(安東, 현 단둥) 압록강 대교를 통해 항미원조 전쟁터로 달려갔다고 회고했다.

적의 공습을 막기 위해 부대는 낮에 잠복하고 밤에 행군했고, 라디오 송수신도 중단했다. 10월 24일 저녁, 조선 북진군 서쪽의 대유동을 지날 때 상급으로부터 적군 일부가 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부대는 작전배치를 연구해 소속 각 단에 25일 4시 전까지 진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예기된 전투를 준비했다.

류전화는 사단 지휘소는 양수동 이북 483 고지 아래쪽에 있는 외딴 인가에 설치되어 있었다고 술회했다. 10월 25일 10시, 354단 단장 주촨위(褚傳禹)가 전화로 적군 영(營)과 포병 중대 하나가 이미 매복권으로 들어왔다고 보고하자 사단장 덩웨(鄧岳)는 즉시 출격 명령을 내렸다.

지원군 군인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용감하게 적진을 향해 돌진해 두 시간 넘는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한미군의 북진 선봉대를 맡았던 남조선군 제6사2단3영과 포병 중대 하나를 전멸시켰다!

류전화는 항미원조 첫 전쟁에서 이기고 사단 전체 군인들이 매우 기뻐하며 연이어 작전을 펼쳐 그날 밤 형제부대와 승세를 몰아 온정리의 적군을 소탕했다고 회고했다. 그 후 118사단은 지원군 사령부로부터 표창장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1951년, 당중앙과 마오 주석의 비준을 받아 1950년 10월 25일은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전쟁 출국 작전 기념일로 지정되었다.

원문 출처: 신화사

 

추천 기사:

(건군 90주년) 中 해군 첫 원양 훈련: 252 잠수함 고장 배제해 군도 돌파

(건군 90주년 열병) 정보화 빅 네트웍으로 3군 연결—건군 90주년 열병에 참가한 정보통신 행열종대 탐방

(건군90주년) 특별기사: 평화 수호의 힘—중국 군대 해외 평화유지군 이야기

기사 오류를 발견시 하기 연락처로 의견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화:0086-10-8805-0795

이메일:xinhuakorea@126.com

010020071350000000000000011103401365276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