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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음력 새해’의 역사는 4천여 년…‘춘제’로 개칭한 역사는 불과 100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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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화망 | 2019-02-05 09:51:49  | 편집 :  박금화

[신화망 톈진 2월 5일] (저우룬젠(周潤健) 기자) ‘폭죽소리 속에서 한해가 지나가고 훈훈한 봄바람이 초갓집에 불어 들어온다.’ 2월 5일은 음력 새해, 즉 기해년의 시작이고 중국인은 이날을 ‘춘제(春節, 중국의 설)’라고 부른다. 민속 전문가는 중국의 가장 큰 명절로서 전통 음력 새해의 역사는 이미 4천년이 넘었고 지금의 춘제는 그 역사가 100여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역사학가이자 톈진(天津)사회과학원 연구원인 뤄수웨이(羅澍偉)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음력 새해의 역사는 매우 길다. 고대 때는 세수(歲首), 원단(元旦), 원일(元日), 신정(新正), 신춘(新春) 등이라고 불렀다. 전설에 따르면, 음력 새해는 우순(虞舜) 시기, 연말연초 신과 선조에게 제사 지내는 행사 혹은 ‘섣달 제사’에서 시작되었지만 정월 초하루를 정식으로 새해의 시작으로 정한 것은 한(漢)나라 때 일이다. 한무제(漢武帝) 이전, 새해가 시작되는 구체적인 시간은 통일되지 않았다. 하(夏)나라 역법에서는 1월을 세수로 했고 상(商)나라 역법에서는 12월을 세수로 했으며 주(周)나라 역법에서는 11월을 세수로 했다. 한무제 태초(太初) 원년, 즉 기원전 104년에 이르러서야 새해의 시작을 하나라 역법의 1월 1일로 정했고 그 뒤로 후세에 전해졌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음력 새해의 습속은 신과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에 불과했다.

당나라와 송나라 시기에 와서 음력 새해의 습속과 역할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때부터 설 쉬는 중점은 신비로운 이미지가 강한 제사 행사에서 오락성과 세속의 취미가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행사로 ‘모드 전환’을 했다. 바꿔서 말하면, 당·송 시기에 와서야 설은 진정하게 천하 사람들이 같이 축하하고 전 국민이 기꺼이 즐기는 ‘중화 제1명절’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비록 음력 새해의 역사는 이미 수 천년 되었지만 정월 초하루를 ‘춘제’로 이름 지은 것은 신해혁명(辛亥革命) 후였다. 1913년 7월, 위안스카이(袁世凱) 대통령은 음력 새해를 춘제로 정하는 것을 비준했고 공휴일로 정했으며 1914년부터 시행했다. 그때부터 음력 새해는 ‘춘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신중국 성립 전야인 1949년 9월 27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기 전체회의에서 오늘날 세계의 대다수 국가가 사용하는 연대기록 제도, 즉 서기를 중화인민공화국의 연대기록 제도로 적용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고 동시에, 관련된 결의를 통과시켰다. 이때부터 정식으로 양력 1월 1일을 새해의 시작으로 확정했고 음력 정월 초하루는 ‘춘제’로 정했다.

뤄수웨이 연구원은 새해도 좋고 춘제도 좋고, 그것은 형식과 명칭의 변화일 뿐, 몇 천년에 걸쳐 쌓아온, 중화민족의 안정적인 심리적 소양을 유지하는 문화적 내포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의 춘제는 단순하게 하나의 명절일 뿐만 아니라, 중화민족이 1년에 한번 회포를 나누고 소망을 이루는 날이기도 하며 중화민족의 영원한 정신의 안식처와 중요한 지주이라고 말했다.

원문 출처: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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