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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일본 우익 세력 중국침략 전쟁에 관한 5대 궤변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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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화망 한국어판 | 2015-08-17 11:41:14  | 편집 :  필추란

   올해는 중국인민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날까지도 일본 우익 세력은 여전히 끊임없이 궤변을 발표하고 있으며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전쟁죄행을 은폐하며 전쟁의도를 미화하려 하고 있다.

   【궤변1】“침략 정의 미정론”——국제적으로 “침략”에 대한 정의에 관해 아직 정설이 없다.

   유엔 설립에서부터 도쿄협상, 뉘른베르크 재판 및 전후 유엔에서 통과한 일련의 문건들에서 한 나라가 무력으로 타국의 주권과 영토를 불법으로 침범하고 타국의 국민을 노역한 수법은 줄곧 “침략” 정의중의 핵심내용으로 확정되어 왔다. 일본 우익세력이 “침략 정의 미정론”을 이유로 대 중국 전쟁의 침략 성질을 부인하는 것은 그 개념을 슬쩍 바꾸려는 것임이 틀림없다.

   【궤변2】“침략 유공론”——일본이 발동한 대외 전쟁은 “대 아시아주의”를 봉행하는 것이며 아시아 각 국을 도와 서방의 식민자들을 내쫓고 영, 미 등 나라가 아시아에서의 식민 체계를 와해하려는 것이였다.

   일본 침략자들이 아시아 국가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아시아를 독점하고 아시아에 큰 화를 입히며 타국의 영토 위에서 방화하고 죽이고 약탈하고 빼앗는 등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 과연 “해방전쟁”일까? 과연 아시아 이웃나라를 “도우려는 것”이였을까?

   【궤변3】“피동 전쟁론”——9.18사변은 일본군이 중국의 “배일 반일(排日反日)”행동의 “자극”을 받아 발동한 것이며 77사변과 전면적 중국 침략 전쟁은 일본이 고의로 발동한 것이 아닌 우발적인 사건의 영향으로 무계획적으로 추진한 결과일뿐 중국 정부에서 일본의 의도와 형세를 잘못 판단했다.

   메이지유신부터 일본의 일부 사상가와 정치가들은 이른바 “이익라인” “생명라인” 이론을 제기했으며 멍구, 조선반도 나아가 아시아 전체를 점유할 터무니없는 계획을 내어놓았었다. 매 한차례 진공을 발동할 때마다 일본은 줄곧 핑계를 찾아왔고 이는 일본 침략자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해온 기량이다.

   【궤변4】“난징대학살 허구론”——일본군의 난징(南京) 점령 기간에 사망한 포로는 소수에 불과하며 극동국제군사재판정과 중국 측에서 난징 대학살을 날조하거나 학살당한 사람의 수를 과장했다. “난징사건” 발생 당시 난징 전체의 인구가 30만명 미만이였다.

   올해 5월, 지린(吉林)성 당안관(기록보관소)에서 공개한 일본군 중국 침략 시기에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대학살 전후 두달 반 내 난징 지역의 인구는 113만명에서 34.5만명으로 감소돼 78.5만명이 줄었다. 당시 난징 인구는 “30만명 미만”이였다는 유언비어가 불공함락됐고 이는 일본군이 난징에 대한 폭행에 새로운 증거를 추가해주었다.

   【궤변5】“죄행 과대론”——도쿄재판은 승리 측의 “복수식” 재판이였고 일본군의 죄행을 과장했으며 수많은 허구적인 성분이 존재한다. 일본군이 2차대전 중의 행위가 부정적으로 묘사됐고 일본 국내법으로 놓고보면 2차 대전 전범으로 확정된 사람들은 사실 전쟁범죄자가 아니다.

   도쿄재판은 평화 대 전쟁, 문명 대 야만, 정의 대 사악함의 한차례 대 재판이였고 증거 제시와 대질 역시 지극히 엄격하게 이뤄졌으며 죄명 선고와 양형 모두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오늘날 일본의 우익 세력이 역사사실을 부인하려 시도하고 역사 교과서 문제에 농간을 부리며 젊은 세대가 이동안의 역사를 알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런 졸렬한 수법은 2차대전 기간 일본 군국주의가 진상을 은폐하려 했던 수법과 똑같다.(번역/신화망 한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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