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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9월, 차카르성 톈전현에서 "부대가 현성을 공격한 후 칼창과 기총 소사로 1000여명 평민을 사살했다".
1937년8월~11월, "조선여성을 유인하여 감금한 후 러허성 청더에서 1명을 강간, 산시성 다퉁에서 2명을 강간했다".
1942년6월~12월, 산둥성 라이우현에서 "감금 중인 조선여성 1명을 20차례 강간했다".
1943년9월, "12군59사단 고위급의 계획에 따라 루시지역에서 콜레라균을 퍼뜨렸다. 유포 후 전염효과를 확대하기 위해 린칭 부근의 웨이하 댐을 3곳 파헤치고 2만 여명(44대대가 조사한 피해자 수, 확실한 피해자 수는 이를 초과함)을 살해했다".
1942년12월~1944년10월, 산둥성 타이안에서 "감금된 조선여성 1명을 80차례 강간했다".
1944년11월, 산둥성 칭수이퍼 부근에서 "30, 40세 좌우의 남자가 마을에 접근했다". 그때 2명의 일행과 함께 "말에 앉아 농민을 뒤쫓은 뒤 찔러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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