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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어린이 마저 희롱...오카노 킨고 日 전범 자백서 제 22집

출처: 신화망 한국어판 | 2015-09-02 18:18:10 | 편집: 리상화

(日本侵华战犯笔供)(1)中国国家档案局发布《日本侵华战犯笔供选》第二十二集:冈野金吾 

   [신화사 베이징 9월 2일] 중국 국가당안국은 1일 공식 포털사이트에 “일본 중국 침략 전범 서면 자백서 선집” 제 22집: 오카노 킨고를 발부했다.

   제22집의 개요에 따르면, 오카노 킨고가 1954년 8월 8일 진술한 서면 자백서에 따르면 그는 1912년 일본 도치기 현에서 태어나 1937년 중국 침략 전쟁에 참가했으며 1945년8월에 포로됐다.

   중요한 죄행은 다음과 같다.

   1937년8월, 허베이(河北)성 시위안(西苑)에서 일당과 함께 포로된 중국 항일요원(30세 좌우의 남성) 2명을 살해했다. “한명씩 나누어 일본도(刀)로 살해한 뒤 시체는 현장에서 묻어버렸다.” 허베이 난커우에서 우리는 일당과 함께 선후로 붙잡아온 남성 1명, 여성 1명에게 “우리 앞에서 성교를 진행하라고 지시한 동시에 구타를 가했다.”

   1937년10월, 수이위안(綏遠)성 펑(豐)진에서 중국 민가에 뛰어들어 “그 집에 살고있는 13세 부녀를 희롱했다.” 그외 “일본 침략군들의 강간을 목적으로 한 소위 ‘세균검사’를 핑계로 중국 부녀 150명을 소집”했으며 군의(軍醫)와 함께 “여성의 음문(陰戶)을 검사하고 희롱했다.”

   1938년5월, 러허(熱河)성 청더(承德)에서 포로된 40세 남성 한명에 대해 “고타(拷打)를 진행하고 찬물을 쏟는 고문을 약 2주간 실시”한 뒤 청더에서 “일본도로 그의 목을 베어냈다.” 중국 민가에 침입하여 “신발수리공인 집주인의 아내를 권력으로 위협한 뒤 집안에서 그녀를 희롱했으며 임질을 전염시켰다.”

   1939년5월좌우, 일당들과 함께 상급의 명령을 받들어 팔로군 포로병 근 250명을 “구베이커우‘古北口’에서 쑨우‘孫吳’에로 자동차에 실어 옮긴 뒤 그들을 제4군 사령부에 넘겼다.” 제4군은 “상술한 250명을 상대로 노역을 시킨 뒤 모두 살해했다.”“살해한 근거라면 이러한 애국자들을 ‘특수공인(特殊工人)’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소위 ‘특수공인’이라는 것은 죽을때까지 노역에 종사하거나 혹은 비밀작업에 이용한 뒤 살해하는 일종의 기호였다. 때문에 이러한 애국자들은 노역을 진행하다가 얼어죽거나 비밀작업에 이용되다가 폭발, 총살, 혹은 세균실험에 사용되어 참살되었다.”

   1940년10월 하순을 시작으로 3주동안, 지린(吉林)성 눙안(農安)현에서 위경(偽警)들과 함께 이시이부대 군의(200명)들의 소위 방역작업에 참여했다. “군의들을 향해 성내(城內) 백성 5000명에 주사를 놓으라고 지시하고 민가에 침입해 소독을 진행했다. 발생된 사망자 200명중 50명에 대해 연구 및 해부를 진행했는바 ‘세균전쟁’의 실시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1945년 8월 15일, 한 중대(中隊)에 “신징(新京) 대거리 및 남관(南關) 부근 일대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있던 근 2000명에 달하는 중국인을 경기관총 혹은 보총으로 사살하라고 지시했고 그 과정에 150명의 중국인이 참살을 당했다.” [번역/ 신화망 한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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