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漂泊至韩国的中国梵钟 日本侵略中韩的历史罪证 |
한국으로 유입된 중국 범종, 일본이 중한을 침략한 역사 죄증으로 |
(자료 사진)
在位于韩国仁川市立博物馆的院落中,安放着3座分别来自中国宋元明时期的大型梵钟。原本应悬挂在中国寺院里供信徒诵经祈福的梵钟为何漂洋过海在韩国仁川安了家?这背后有何历史渊源? 3口体形巨大的中国铸铁梵钟为何会漂洋过海来到仁川?博物馆工作人员告诉记者,除了大钟,仁川市立博物馆里还藏有来自中国明代的青铜观音菩萨坐像以及清朝的两个香炉等。而这些中国文物的由来与日本人侵略朝鲜半岛的历史密不可分。 上世纪初,朝鲜半岛沦为日本殖民地。1940年前后,日本人在仁川富平地区建立一座陆军兵工厂。1942年日本发动的太平洋战争最激烈时,战略物资奇缺,为了战争需要,日军不仅在朝鲜半岛、甚至还从中国搜刮来大量铜铁类文物运到兵工厂。然而还没等日军将这一批文物熔化成铁,日本就于1945年8月宣布投降。 光复后的韩国百废待兴,正在筹建仁川市立博物馆的第一任馆长李女士无意中在富平兵工厂的废墟里发现了这几件中国文物。就在这样的机缘巧合下,这些中国文物成为仁川市立博物馆里最珍贵的藏品之一。 仁川市立博物馆展示教育部部长裴晟洙告诉记者,朝鲜半岛沦为日本殖民地时期,许多文物被日军搜刮后毁于一旦。这些战争时被日本人掠夺到韩国的中国文物,因此也是日军侵略罪行的见证。每当有参观者来访时,解说员都会特别介绍这些中国文物的由来。 随着参观者不断增多,有些韩国民众知道了这些有特殊经历的中国文物后,也讨论过是否应让文物回家。对此裴晟洙表示,此前,一家收藏了韩国文物的中国博物馆曾与馆方联系,希望交换文物。但馆方认为,这些文物既然是在仁川被发现,有其特殊意义,因而希望它们还是能留在博物馆内作为一段历史的见证。 |
한국 인천시립박물관 마당에는 중국의 송, 원, 명나라 시기의 대형 범종(梵鐘) 3개가 전시되어있다. 중국의 사원에 걸려 신도들의 독경, 명복 기원에 사용되어야 할 범종들이 어떻게 바다건너 한국 인천에 자리를 잡았을까? 그 배후에는 어떤 역사적인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까? 3개의 거대한 중국 주철 범종은 어떻게 바다건너 인천으로 유입됐을까? 박물관 사업인원은 기자에게 대형 종 외에도 인천시립박물관에는 중국 명나라의 청동 관음보살 좌상 및 청나라의 두 향로 등이 소장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중국 문물의 유래는 일본이 조선 반도를 침략한 역사와 갈라놓을 수 없다. 지난 세기 초 조선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1940년을 전후하여 일본인들은 인천 부평지역에 육군 병기 공장 하나를 세웠다. 1942년, 일본이 발동한 태평양전쟁이 가장 치열하게 치뤄지던 시기 전략물자가 심하게 부족하자 전쟁 수요로 일본군은 조선반도, 심지어 중국에서 대량의 구리, 철류 문물을 병기 공장으로 약탈해갔다. 그러나 일본군이 이 문물들을 쇠로 녹이기도 전인 1945년 8월, 일본이 투항을 선포했다. 광복후 한국의 지체된 모든 사업이 새로운 흥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조성중이던 인천시립박물관 초대 관장 이 여사가 뜻밖에 부평 병기 공장 폐허에서 이 몇가지 중국 문물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병기 공장에 약탈되어 온 중국 문물들이 인천시립박물관의 가장 진귀한 소장품 중의 하나가 되었다. 배성수 인천시립박물관 전시교육부 부장은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조선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됐던 시기 수많은 문물이 일본군에 의해 약탈당하고 훼손됐다. 따라서 전쟁 시기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약탈해온 중국 문물 역시 일본군 침략 죄행의 증거물이다. 참관자들이 방문할 때마다 해설자는 이 중국문물들의 유래를 특별히 소개하곤 한다. 참관자들이 끊임없이 늘어나면서 일부 한국 대중들도 이런 특별한 경력을 보유한 중국문물을 알게 됐고 문물의 귀국여부를 논의한 적도 있다. 이에 배성수는 앞서 한국문물을 소장하고 있는 중국 박물관에서 인천시립박물관 측과 연락해 문물교환을 제안한 적이 있다면서 그러나 인천 측에서는 이런 문물들이 인천에서 발견됐고 특별한 의의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박물관에 소장되어 역사의 증거물이 돼주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번역/신화망 한국어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