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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아우슈비츠’에 던지는 질문

출처: 신화망 | 2017-09-18 14:22:12 | 편집: 박금화

[신화망 하얼빈 9월 18일] (저우다펑(鄒大鵬), 왕젠(王建), 양쓰치(楊思琪) 기자) ‘아우슈비츠에는 뉴스가 없었다’, 마이클 로젠탈 기자가 59년 전에 쓴 이 보도가 나치스의 죄악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아우슈비츠에서 7,000km 밖에 떨어진 중국의 가장 북쪽에 있는 성 소재지 하얼빈(哈爾濱)시 핑팡(平房)구에 70여년 간 묵묵히 서 있는 폐허 한 곳이 있다. 여기가 바로 세계에서 보존된 규모가 가장 큰 세균전쟁의 유적지 건물이다. 하지만 일본 파시즘이 저지른 너무도 많은 반인류 폭행이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살아서 이곳 지옥에서 탈출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류를 수차례 명종시킬 수 있는 죄행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 731부대의 죄증을 진열한 전시관과 유적지에는 담벽이 없었다. 맑은 햇빛 아래 4층 높이의 파손된 시멘트 담벽과 3개의 거형 굴뚝이 유난히 ‘눈을 찔렀다’.   70여년 전, 높이 2.5m, 너비 1m인 담장에 고압 전력망이 설치되었고 담장 밖의 너비와 깊이가 모두 3m인 방어도랑과 함께 이 ‘인간지옥’을 세상과 격리시켰다. 최소 3,000여명의 인체실험 피해자가 이곳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일본어에서 ‘마루타(馬路大)’는 ‘껍질을 벗긴 나무’란 뜻이다. 이곳에서 ‘마루타’는 중국, 소련과 조선 등 나라의 평민과 포로들이었고 그들에게는 이름이 아닌 하나하나의 존엄이 없는 넘버 밖에 부여되지 않았다.

전 731부대 특별반 대원이었던 시노즈카 요시오(筱冢良雄)는 추억을 더듬으며 실외 동상실험에서 작은 몽둥이로 ‘마루타’의 언 손을 계속 두드렸는데 나무 두드리는 소리가 날 때가지 기다렸다가 뼈와 살이 갈라질 때가지 온도가 서로 다른 물속에서 테스트를 진행했다며, 하여 많은 사람의 손과 발이 짤려 나갔다고 말했다.

전 731부대의 행정병 스즈키(鈴木)는 마지막으로 처치된 ‘마루타’의 비참함을 입증했다. “전쟁에서 실패하기 10여일 전,독가스로 80여명을 모두 독사시켰고 시신을 태워버린 후 내 차에 실어 쑹화장(松花江)에 버렸다”고 스즈키는 말했다.

진청민(金成民) 중국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 진열관 관장은 일본군이 도주 시, 사방으로 퍼진 쥐와 벼룩 때문에 핑팡구에 페스트가 만연했고 얼다오툰(二道屯)의 한 작은 마을에서만 50명이 감염으로 사망했으며 중국의 창더(常德), 이우(義烏), 윈허(雲和), 취저우(衢州) 등 4개 지역에서 15,033명이 일본군의 세균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고 톤 단위로 계산한 731부대가 생산한 세균을 전부 뿌린다면 인류 전체를 한번이 아니라 몇번을 명종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의 그늘에 숨겨진 폭행

“생물무기는 상상할 수 없는 살상력을 가지고 있고…자원이 결핍한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세균전쟁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교토데이코쿠대학(京都帝國大學) 의학부를 졸업한 세균전쟁의 장본인 이시이 시로(石井四郎)는 자기의 두 형도 자기 부대에 끌어들였다.

“731부대의 모든 비밀은 반드시 무덤으로 가져가야 한다!” 1945년 8월 9일, 이시이 시로는 모든 서류, 실험보고서 등을 모두 태워버리거나 폭파해 버리도록 비밀리에 명령을 내렸고 15편의 기차로 부대 전원을 일본으로 귀국시켰으며 귀국 후 신분을 드러내면 안되고 서로 연락해서도 안된다고 엄격한 지시를 내렸으며 본인은 몇개월 후, 심지어 고향에서 거짓 장례로 죽음을 위장했다.

더욱 사람을 분노하게 하는 것은 미국은 실험데이터 등 비밀 서류를 입수하는 조건으로 일본과 암암리에 거래를 진행함으로써 이시이 시로 등 많은 전범이 응징에서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미처 완전히 폭파시키지 못한 유적지, 원 731부대 대원의 증원, 일본과 미국에서 수집한 서류…등 철같은 증거들이 모두 역사의 진상을 말해 주고 있다.

역사를 직시해 비극의 재현을 방지

‘마루다’들이 헌병에 의해 압송해 왔을 때의 기록, 인체실험 보고서 등 사진들이 죄증 진열관의 벽 6면을 도배했다. 진청민 관장은 미국국가기록보관소에서 수집해 온 서류만 8,000페이지가 넘고 인증, 물증과 서류에 이르기까지 일본 침략자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행이 완벽한 증거로 사람들 앞에 펼쳐졌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이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일본 NHK방송국이 제작한 다큐 ‘731부대의 진상’이 강한 충격을 불러일으키면서 많은 일본 네티즌들이 역사를 반성하고 “이런 잔혹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전쟁이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이 무엇인지 알려 줘야 한다” 등 메시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석양이 731유적지의 파괴된 담벽을 넘어 강아지풀에 비춰졌다. 이 시각의 평화로움을 수호하듯 서 있는 이 풀들 속에, 이 땅 속에 얼마나 더 많은 밝혀지지 않은 진상이 묻혀 있을까?

‘동방의 아우슈비츠’에 던진 이 질문이 긴 메아리 속에서 울려퍼졌다… 

원문 출처: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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