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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바이산 아래 나붓기는 시골관광의 ‘홍기’

출처: 신화망 | 2019-04-23 16:28:00 | 편집: 리상화

(壮丽70年·奋斗新时代·图文互动)(1)长白山下,有这样一面乡村旅游“红旗”

관광객이 훙치(紅旗)촌에서 조선족 가무를 감상하고 있다(4월 16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린훙(林宏)]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안투(安圖)현 완바오(萬寶)진 훙치촌은 ‘중국 조선족 제1촌’으로 불리고 있다. 30년의 끈질긴 탐색과 분투 끝에, 훙치촌은 보통 역참에서 조선족 민속관광의 대표와 시골관광의 ‘홍기’로 부상해 관광객이 ‘필히 들리는’ 관광지로 되었다.

욕‘수’중생(浴‘水’重生)

옌볜조선족자치주 주정부 소재지 옌지(延吉)시에서 창바이산(長白山)으로 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밍창(明長)도로 옆에 자리잡은 훙치촌은 마을 도로 양측에 청색 기와에 흰벽을 칠한 조선족 주택이 질서 있게 분포되어 있다. 마을에 86가구, 326명이 살고 있고 대부분 조선족이다.

1987년, 훙치촌은 큰 홍수에 잠겼다. “마을이 큰길과 가까워 수재 후, 마을을 도로 옆으로 옮겨 조선족민속촌을 만들고 관광업을 발전시키면 좋지 않을가”가 당시 안투현 성향건설위원회를 관장하던 진전궈(金鎮國) 주임의 구상 이었다.  

1988년부터 마을 주민은 몇 번에 나눠 밍창도로 길가로 이주했다. 진전궈 주임은 “현에서 매 가정에 3,000위안 무이자 대출을 제공했고 매 가정은 민박 표준으로 설계했다. 아울러 장기적인 안목으로 실내 화장실도 설치하고 지하에 오수배출 파이프도 설치했다”고 소개했다.

이주하고 나서 대대적인 관광홍보를 한 훙치촌은 창바이산으로 가는 관광객이 쉬어 가는 휴게소로 되었고 당시 1년에 연인원 10여만명의 관광객을 접대했다.

2010년 7월 28일, 백 년에 한번 만나기도 힘든 대홍수가 재차 훙치촌을 삼켜버렸다. 정부의 도움으로 2년의 재해 후 재건을 거쳐 훙치촌은 또다시 활력을 찾았다.

재건 후의 훙치촌은 외부 투자를 유치했다. 2012년, 장자제(張家界) 등 관광명소에서 관광업에 종사했던 천사오커(陳紹科)는 훙치촌으로 눈길을 돌렸다. 천사오커는 “민속문화 내실이 깊은 훙치촌은 시골관광을 발전시킬 수 있는 비옥한 땅”이라고 말했다.

점‘속’성금(點‘俗’成金)

관광업체의 대규모 경영과 집중관리를 기반으로 훙치촌 민속관광은 재차 활기를 띄었다. 훙치촌은 잇따라 민속체험홀, 민속체험관, 조선족 100년 주택 등 참관·체험 시설을 세웠고 정부 출자로 영지재배 비닐하우스를 만들었으며 논밭투어 수로 등 관광 코스도 개발했다.

참관, 체험, 민박, 열매따기 등 관광 프로그램은 오늘에 와서 이미 마을 주민의 농사 외, 제2의 ‘농작물’로 되었다.

아는 바에 의하면, 2011년 홍치촌이 관광업을 회복한 후, 당해 관광객은 연인원 17만 5천명에 달했고 2018년은 관광객이 연인원 45만명에 달했다. 자오저판(趙哲範) 훙치촌 주임은 기자에게 관광회사의 주차장 임대, 열매따기 등 프로젝트 수익배당금만 해도 훙치촌의 연간 집체소득이 40만 위안 안팎에 달한다고 말했다.

‘바람’ 빌려 원항  

관광객이 많아지고 더욱 많은 조선족 민속마을이 생겨남에 따라, ‘중국 조선족 제1촌’의 ‘금박 간판’을 어떻게 계속 빛낼 것인가? 이와 관련해, 훙치촌은 끊임없이 전통 패턴을 돌파하며 시골관광을 심도있는 관광으로 추진하고 있다.

양쑹펑(楊松峰) 안투현 문화관광국 국장은 안투현은 훙치촌을 중심으로 부근에 백리 풍경화랑과 황금 관광통로를 건설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민속관광으로 인해 일어선 훙치촌, 농촌진흥의 길에서 또다시 출발했다. 

원문 출처: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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