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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미원조 노병 류진환: 통신병에게는 통신이 목숨보다 중요

출처: 신화망 | 2020-10-23 14:24:34 | 편집: 박금화

[신화망 베이징 10월 23일] 70년 전, 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피를 뿌렸다. 

이미 노년이 된 지금에도 그들은 파란만장했던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바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항미원조에 나간 중국인민지원군이다. 

류진환(劉金歡) 노인이 그들 중 일원이다. 
 
올해 89세인 그는 신체가 건강하고 꼿꼿한 몸매에서 군인의 기품이 풍겼다. 귀가 약간 어두운 것은 전장의 쾅쾅거리는 대포 소리가 그의 청력을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70년 전 정경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그의 기억에 생생하다. 
 
그의 진술과 함께 포화의 불길이 하늘을 덮는 전쟁터로 돌아가 격정이 타오르는 세월을 되새기며 영웅의 애국심을 읽어보기로 한다. 

1948년, 17살 밖에 되지 않은 류진환이 입대해 선후로 타이위안(太原)과 시안(西安), 란저우(蘭州)를 해방하는 전역에 참가했다. 
 
1950년, 평화를 수호하고 침략에 반항하기 위해 중국 당과 정부가 단호히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의 역사적인 의사결정을 내렸다. 뒤이어, 류진환이 소속된 부대가 명령을 받고 조선으로 나갔다. 
 
전방의 생활은 간고했다. 조선의 한겨울 기온이 심지어 섭씨 영하 3,40도까지 내려갔다. “적군의 무차별한 폭격을 피하려고 밥도 못 짓는 경우가 많았고 미숫가루를 눈과 같이 삼켜야 했다”고 류진환은 말했다. 
 
수수와 옥수수, 검은 콩을 가루 내서 만든 미숫가루는 그냥 먹기엔 너무 말라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먼저 눈을 입에 넣어 녹이고 다음에 미숫가루를 넣고 같이 삼켰다. 한끼 먹고 나면 혀가 얼어서 느낌이 없을 지경이다.” 
 
가장 고생스러운 것은 엄동설한에 임무를 집행하는 것이라며 류진환은 “적군의 정찰기가 뜨는 날에는 적군에 노출되지 않으려고 눈벌판에서 보복행진을 해야 했고 손발은 꽁꽁 얼었어요. 어떤 전사는 언덕이나 고개를 넘으면서 신발이 벗겨지면 맨발로 그냥 걸어갔는데 나중에 발과 양말이 다 한데 얼어붙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젊은 시절의 류진환.

통신병으로서 류진환의 주요 직책은 전화선의 고장을 찾고 선로를 수리해 지휘부와 일선 진지의 순조로운 통신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최전방에서 총을 들고 싸우지는 않지만 우리 통신병은 원활한 지휘를 보장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적들이 중점으로 습격하는 목표이기도 해요. 통신병으로서 통신이 목숨보다 중요했어요. 임무 집행 과정에서 전우가 쓰러지면 새 사람이 와서 그 자리를 메워야 했어요.” 
 
이 대목에서 류진환 얼굴에 슬픔이 약간 어렸다. 잠시 후 바로 활기를 되찾은 그는 “소대장은 제가 젤 영리하다고 저를 데리고 임무 집행하기를 좋아했어요. 전쟁터에서는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뜻밖의 사고는 일어나고야 말았다. 
 
유진환은 그 때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1953년 6월 16일, 적군의 폭탄으로 인해 전화선이 끊어졌다. 그가 시간을 다퉈 수리하는 도중에 또 한발의 폭탄이 근처에서 터져 파편이 그의 왼손 절반을 깎아버렸다. 
 
“칼로 에이듯 아리고 아팠어요. 폭탄이 터질 때는 파편이 톱니 같아 순식간에 살을 베어버렸어요”. 류진환은 “뼈가 밖으로 나와 눈으로 훤히 볼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전쟁 상황이 긴급해 통신이 끊겨서는 안된다. 긴요한 시각, 그는 큰 아픔을 참고 이와 손으로 어렵게 전화선을 이었다. 
 
임무가 끝난뒤 소대장이 그의 상처를 싸매주었다. 
 
당시 이미 여름이 시작되어 날씨가 무더웠다. 며칠 지나지 않아 류진환은 상처 부위가 많이 아파 의사에게 붕대를 열어 봐달라고 했다. 
 
“의사는 함부로 열면 파상풍에 걸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며 안된다고 했어요. 전 목숨을 잃어도 좋으니까 안에 어떻게 된 건지 봐달라고 했어요. 나중에 붕대를 열어보니까 구더기가 많이 생겼어요. 의사는 구더기가 생겼다면서 간호사에게 주사기에 등유를 담아 상처 부위를 씻으라고 했어요. 구더기가 간호사가 밑에 바친 쟁반에 떨어지더라구요. (등유가) 신경을 건드리니까 견딜 수 없이 아팠어요.” 고통스러웠던 그 때 경력을 떠올리는 류진환은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류진환이 부상을 입고 귀국한 후 1개월이 지나 드디어 승리의 날을 맞이했다. 
 
1953년 7월 27일, 조선전쟁 정전협정이 판문점에서 체결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류진환은 “드디어 끝났다. 이제 더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 마침내 승리했다. 희생된 전우들이 이제는 편이 잠들 수 있겠구나!”라고 위안을 느꼈다.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출국 작전 70주년’ 기념패를 손에 든 류진환.
 
(류진환: 1931년 산시(山西) 허취(河曲) 출생, 1948년 입대, 1950년 조선에서 작전, 3등공 수상)  

원문 출처:신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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