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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신화사 기자 왕숭(王松), 번역/ 리상화]
[신화사 베이징 8월 17일]제1회의 해설에 따르면 일본의 “위안부”제도는 2차 대전 시기 일본 정부에서 계획적으로 일본군에게 배치한 성노예 제도이다. “위안부”는 일본이 일본군을 위해 성서비스를 제공하는 여성에 대한 총칭이며 여성인권에 대한 적라라한 유린이다.
현재 영문 Comfort Women(위안부)는 날따라 그 죄악의 본질인 Sex Slaves(성노예)로 대체되고 있다.
1932년 1월, 일본군이 상하이(上海)에서 중국군을 향해 진공을 발동했다. 이를 전후해 상하이에는 일본군 관병들을 위한 “위안소”와 “위안부”들이 나타났다.
1937년 7월, 일본군이 전면적인 중국 침략 전쟁을 발동했고 일본군은 중국의 점령지에서 전면적으로 “위안부”제도를 보급했다.
태평양전쟁이 폭발한 뒤 일본군의 위안소 역시 동남아시아의 점령 지역에로 확장됐고 일본이 전패, 투항할 때에 이르러서야 이 군사성적인 노예제도가 종료됐다.
오늘날 중국의 중앙당안관, 랴오닝(遼寧)성, 지린(吉林)성, 헤이룽장(黑龍江)성, 상하이시, 난징(南京)시 등 지의 당안관에는 여전히 일부 “위안부”와 관련된 기록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런 당안들에는 전시에 형성된 일본 측 당안과 일본이 점령 구역에서 육성한 괴뢰정권 당안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전후 중국 정부가 피점용 자산을 접수하고 전쟁손실 조사, 일본 전범 심문 과정에 형성된 당안들도 있다. 이런 당안들은 일본군이 그때 당시 “위안부”를 강제 징용하고 “위안소”를 개설한 역사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보였으며 얻기힘든 인류의 역사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