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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6월, 후베이성 징먼(荊門)현에서 중대 초병이 “서른 대여섯살쯤 돼보이는 중국 평화 인민 남성 1명을 체포했고”, 시라스 이사무가 “총검으로 찔러죽였다”.
1941년 5월, 징면현에서 “짚더미에 숨어있는 스물 한두살 좌우의 중국 여성을 중국 인민의 가옥 내로 끌고 들어가” 1명의 동료와 함께 윤간했다.
1943년 12월 25일, 후베이성 위안안(遠安)현에서 “바이양스(白陽寺) 대학살”에 참가했다. “대대장 야마나카 타카오 대위가 ‘바이양스촌의 주민을 전부 죽여버려야 한다. 여성과 아이도 모조리 말이다. 가옥은 전부 불태우고 물자를 모두 징발하라’고 명했다. 대대는 이 명령에 따라 바이양스 촌의 노인, 여성, 아이를 포함한 100명 중국 평화인민을 도살했고 70채 이상에 달하는 중국 인민의 가옥을 불살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