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사진)
[신화망 지난(濟南) 3월 11일] (류바오선(劉寶森) 기자) 한국 취푸(曲阜) 공(孔)씨 대종회(大宗會)에서 온 공자의 후손들이 10일 취푸 공자묘에서 선현(先賢) 공자를 위해 제를 지냈다. 그들의 이번 중국행은 8만여명의 재한 공자 후손들을 대표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향했던 족인(族人)의 발자욱을 찾고 한국으로 가장 일찍 이주한 선조의 신분을 확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0일 아침, 공대식 한국 취푸공씨대종회 회장을 리더로 하는 한국 후손 대표 8명과 중국의 공자 후손 족인들은 어깨에 노란색 끈을 두르고 공자묘 만인궁(萬仞宮) 앞의 신도(神道)에 모여 선조 공자를 위해 공동으로 제를 지냈다.
2009년에 반포된 “공자세가보(孔子世家譜)”는 3만여명의 한국 공씨 후손들을 처음으로 기입했는데 이는 해외 공자 후손들이 족보에 이름을 올린 데서 최대 인수의 지파(支派)로 된다. 한국의 공자 후손들이 수정한 1996년판 “취푸공자세보(曲阜孔氏世譜)”(한국 후손 족보)에서는 현재 한국에 8만여명의 공자 후손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통계했다.
그러나 이번 족보 기입은 세대 순차의 연결 문제를 남겼는데 이는 목전까지 한국 후손 족보 속의 선조가 “공자세가보” 총 족보의 그 어떤 세대와도 연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열린 중한공자후손가보속수사업회의(中韓孔子後裔家譜續修工作會議)에서 공대식은 새 증거를 여러개 제시하면서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장 일찍 도착한 이는 공자의 47대 후손인 공덕수(孔德狩)라고 추단했다. 이 관점이 성립될 경우, 공자 후손들의 한국 이주시간은 송대(宋代)로 앞당겨지게 된다.
중한 공자 후손들은 공대식이 제기한 관점에 깊이있는 토론을 진행했으나 공씨 족인들의 계승 맥락을 확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연구토론회가 진행되기 전에 한국측 족인들의 관점에 대해 중국측 후손들은 충분한 재료수집과 비교인증을 거쳤으나 이 관점을 지탱해줄 관련 증거가 부족하며 보다 설득력있는 재료에 근거해야 함을 발견했다.
“우리는 한국에 가장 일찍 도착했던 공자의 후손이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공복영 한국 공씨대종회 부회장은 “바로 이 연결문제를 해결하고저 우리는 수년간의 연구에 진력해왔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원문 출처: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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