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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12월 27일, 마오쩌둥(毛澤東)이 산베이(陕北, 섬북) 와요보(瓦窑堡) 당의 활동분자회의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책략에 관한 글”을 보고하고 있는 장면이다(자료 사진).
1934년, 제5차 반 ‘포위 토벌’실패로 중앙홍군은 장정을 시작했다. 동시에 중화민족은 이미 일본의 전면 중국 침략전쟁의 먹구름에 휩싸였다. 장정을 시작하기 전과 시작한 후에 중공중앙은 선후로 두 갈래의 항일 선발대를 조직하여 북상 항일했다. 1935년 10월, “항일구국을 위하여 전국 동포에게 고하는 글” 즉 “8·1선언(八一宣言)”을 공식으로 발표해 내전 정지, 항일구국을 호소했다. 12월, 중국 공산당은 베이핑(北平) 학생들을 영도하여 위세가 드높은 ‘12·9’운동을 진행했고 또한, 와요보회의의 개최는 중국공산당 항일민족통일전선의 책략 방침을 확정했다. 1936년 2월 동북 각 항일무장은 동북 항일연군으로 편성되어 백산 흑수 전선에서 일본군의 침략에 저항해 나섰다. 6월, “중국인민항일홍군대학”(후에 “중국인민항일군정대학으로 개명”)이 설립되어 항일 신생역량을 양성했다. 1937년 8월 힘든 노력끝에 장정을 완성한 중국 공농홍군 주력은 국민혁명군 제8로군(팔로군으로 약칭)으로 개편하여 항일전선으로 출동했다. 공산당이 지도하고 장정에서 나온 이 인민군대는 확고부동한 이상과 신념, 희생을 두려워 하지 않는 영웅기개로 민족의 해방과 국가를 멸망의 위기로부터 구원하는 튼튼한 기둥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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