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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중공중앙과 국무원은 통지를 발부하여 허베이 슝안신구(雄安新區)를 설립할 데 대해 결정했다. [촬영/신화사 기자 양스야오(楊世堯)]
[신화망 스자좡 4월 7일] 최근 중국 공산당 중앙과 국무원은 허베이 슝안신구(雄安新區)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는 통지를 발표했다. 이는 시진핑(習近平)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이 내린 중대한 역사적 전략 선택이다. 슝안신구의 설립은 허베이, 나아가 전국의 개혁 발전에 무엇을 의미할까? 신구는 어떻게 건설을 가동, 시행할까? 현재 어떤 중점 업무를 파악해야 하는가? 신화사 기자는 5일 자오커즈(趙克志) 허베이(河北)성 위원회 서기와 인터뷰했다.
천년 도시 건설은 국가 대사
신화사 기자: 슝안신구는 어떤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설립되나?
자오커즈: 슝안신구의 설립은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이 내린 중대한 역사적 전략 선택이다. 큰 배경은 징진지(京津冀, 베이징∙톈진∙허베이) 협력발전 시행이다. 이는 전체 국면과 장기적인 발전에 중대하고 심원한 영향을 미치며, 허베이에 천재일우의 역사적인 기회를 가져왔다.
신화사 기자: 베이징에 집중된 비수도 기능을 분산시키는 장소로 왜 슝안신구를 선택했나? 이는 허베이의 향후 발전과 징진지 협력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자오커즈: 슝안신구는 베이징, 톈진(天津), 바오딩(保定) 요지에 위치해 있어 베이징, 톈진과의 거리가 적당해 입지적인 우위가 뚜렷하고, 교통이 편리하고 원활하며, 생태환경이 우수하다. 또 자원 환경 수용력이 비교적 강하고 기존의 개발 정도가 비교적 낮아 발전 공간이 여유가 있으며 높은 출발점과 고표준 개발 건설의 기본 조건을 갖추고 있어 베이징의 비수도 기능 분산을 집중적으로 넘겨 받는 최적의 장소이다.
슝안신구 계획 건설이라는 중대한 국가전략이 허베이에서 실시되는 것은 우리에게 사명감과 책임, 임무를 부여했다.
신구는 베이징에 일익(一翼)을 보태고, 허베이에도 일익을 보탠다
신화사 기자: 새로운 시대적 배경에서 슝안신구 설립의 현실적인 목표와 중대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자오커즈: 슝안신구 계획 건설은 베이징의 비수도 기능을 집중적으로 분산하고 베이징 도시 부중심과 베이징의 새로운 양익(兩翼)을 함께 형성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또 지역 발전의 걸림돌을 신속하게 보완하고 허베이 경제사회발전의 질과 수준을 높이며 새로운 지역 성장축을 육성하고 형성하는 데도 유리하다. 그리고 징진지 도시 배치와 공간 구조 조정과 최적화에 도움이 되고, 인구 경제밀집지역 최적화 개발의 새로운 모델을 모색하고 전국 혁신 드라이브 발전의 새로운 엔진을 만들며 징진지 세계급 도시군 건설을 가속화하는 데 중대한 현실적 의미와 심원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허베이에 있어 슝안신구 계획 건설은 허베이의 양익을 형성했다. 일익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장자커우 북쪽 지역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고, 다른 일익은 슝안신구로 허베이 중남부 및 전체 허베이의 발전을 추진하는 것이다. 이는 허베이의 산업 단계, 혁신 능력, 공공 서비스 수준을 대대적으로 높이고, 허베이성이 전환 가속화, 녹색 발전, 비약적인 향상의 새로운 길을 걷도록 추진할 것이다.
부동산 통제 및 신구 관리기관 조직 건설 등 5대 중점 업무 완수
신화사 기자: 슝안신구 건설에 대해 허베이는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떻게 가동, 실시되는가?
자오커즈: 신구 계획 건설 추진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실제적으로 해야 하는 한편 사상을 해방하고 개혁 혁신해야 한다. 차후 우리는 5개 분야의 일을 중점적으로 완수할 계획이다.
첫째, 전달 학습을 심층적으로 조직하여 사상과 행동을 당중앙 결정 배치로 통일한다. 둘째, 계획, 토지, 부동산 통제를 강화하고 신구의 ‘5가지’ 동결을 지속적으로 시행해 대규모 부동산 개발을 엄격히 금지하고 부동산 불법 중개, 부동산 투기단, 투기개발상 활동을 엄중히 단속하고 부동산 시장과 중개기관을 정돈하여 신구 및 주변지역 부동산 가격과 땅값을 확실히 잡는다. 셋째, 여론 유도를 잘 한다. 넷째, 계획 편제를 심화한다. 다섯째, 업무기관을 구축, 완벽히 한다. [왕훙펑(王洪峰), 장쉬둥(張旭東), 리야훙(李亞紅), 왕민(王敏), 차오궈창(曹國廠) 기자]
원문 출처: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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