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華網韓國語 >> 기사 본문
아침 8시경, 우리취재팀은 하루의 취재일정을 시작했다. 비록 아침이지만 온도는 35도를 넘을듯 싶었다. 난징(南京)의 아침은 정말 무더웠다. 이처럼 무도운 도시가 중국에서 더운도시의 10위권에 들지 못한다는게 나로서는 믿기지 않았다.
40분간 택시를 타고 난징푸즈묘(南京夫子庙) 근처에 있는 난징시 제1병원에 도착했다. 환자들로 북적이는 정형외과(骨外科)에서 오늘 취재해야할 김성철 의학박사를 만났다. 김성철 박사는 현재 난징시 제1병원 정형외과의 부주임의사이며 관절과 주치의사였다.
지린(吉林)시에서 태여난 김성철 박사는 연변대학 의학원을 졸업하고 지린시정형외과전문병원에서 취직하여 타인의 존중을 받는 의사로 되였다고 한다.
“자신의 부족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2001년 한국 라주대학교의 정형외과의 교수와의 인연을 계기로 한국으로 류학을 떠나게 되였다. 비록 중국에서 인지도가 있는 병원에서 출근하고 인맥도 일정하게 쌓아서 만족스러운 생활도 하게 되였지만 점차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였다고 한다.
2001년 그는 더욱 많은걸 배우려는 마음으로 한국에 류학을 떠났다고 한다.
한국에 도착한후 뭐가 가장 어려웠는가고 하는 물음에 김성철 박사는 그가 가장 어려웠던것은 언어 장애였다고 한다.
언어가 가장 어렵다는것은 한국어가 아닌 영어였다고 한다. 고향에서 학교다닐때에 외국어로 일어를 배우다 보니 영어를 잘 몰랐지만 의학전문분야에서는 영어를 모르면 아무것도 배울수가 없었다고 한다. 거의 매일밤12시에 기숙사로 돌아가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학업을 하루빨리 끝내 고향에 돌아오고 싶었던 김성철 박사는 한국 학생들보다 공부에 더욱 많은 시간을 투입했다고 한다. 그는 석사과정을 2년, 박사과정을 2년반만에 마쳤다고 한다. 한국에서 박사를 2년반만에 땃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을지 상상이 갔다.
“제가 공부할때 수입이 없어 안해가 많이 고생했습니다. 중국에서 학교에서 출근했던 안해는 한국에서 중국어 강사로 있으며 가정중임을 짊어졌습니다.”
사실 졸업후 한국에서 의사로 2,3년간 근무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의사로 있으면 높은 대우를 받을수 있었지만 김성철 박사는 중국에 돌아오면 자신의 의학기술을 더욱 가치있게 사용될수 있다고 생각되여 중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처음 난징에 왔을때 너무 쓸쓸한 감이 들었습니다. 11월말인데 눈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간혹 난징에 출장올때는 몰랐는데 여기에서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니 쓸쓸한 감이 들었습니다.”
평소 학술교류를 위해 난징에 출장왔을때는 몰랐는데 난징에서 장기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고 한다.
눈비가 내리는 11월말의 어느날, 짐을 들고 난징에 도착한 김성철 박사는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의심했다고 한다.
북방에서 태여난 그는 난방이 없는 으스스한 난징의 겨울이 가장 적응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인터넷에서 난방보일러장치를 설치하는 회사를 찾아서 난방설비를 설치했다고 한다. 마침 난방설비를 설치하던 사장이 조선족이였기에 서로 친구가 되였고 그후 그 사장의 소개로 점차 난징의 기타 조선족과 만나게 되였다고 한다. 이러한 만남은 그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주었으며 난징을 더 이상 타지가 아닌 제2의 고향으로 받아들일수 있게 했다고 한다.
취재중 급하게 찾아온 환자를 위해 김성철 박사는 취재를 잠시 중단할것을 요구했다. 열심히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의 말에서 의사의 고심함을 느낄수 있었다.
“환자가 이의를 제출한다고 해서 그걸 반박하고 반대할게 아니라 왜서 그런지를 파악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김성철 박사는 최근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초점이 되는 현시점에서 역사지리로 “내가 만약 환자하면”하고 생각하면서 환자를 배려한다면 아무리 말썽을 부리며 생트집을 잡는 환자라도 결국 의사의 진심을 느끼게 될것이라며 인내심을 조금만 더가지고 환자 마음의 불안과 의심을 풀어 몸의 병과 마음의 병을 같이 치료해주어야 한다고 한다.
(김성철 박사를 취재한 기사)
어떨때 가장 성취감이 있는가는 우리의 물음에 김성철 박사는 환자분들이 완쾌되여 감사패를 증정하고 찾아와서 인사를 할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며 밝게 웃었다. 벽에 수두룩히 걸린 감사패들은 묵묵히 의사들의 로고를 위로해주고 있는것 같았다.
감사패 하나하나에 또 다른 이야기가 담겨있을것이다. 환자들이 자신의 손으로 이 감사패를 의사한테 넘길때 어떤 심정이였을까? 감사패를 받는 의사는 어떤 마음이였을가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취재를 마치고 병원을 나오며 의사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외운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이 생각났다.
모든 내용은 다 외울수는 없지만 선서문 중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라는 문구가 생각났다. 특히 환자의 건강을 위해 그 마음까지 읽으려고 하는 마음, 그 정성은 더욱 많은 환자들에게 복지로 되지 않을가 생각한다.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