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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조부 존 마지의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크리스 마지. [촬영/ 신화망 기자 왕산닝(王珊寧)]
[신화망 난징 12월 14일] (왕산닝(王珊寧) 기자) 1937년 12월 13일, 난징(南京)을 공략한 일본침략군은 6주에 걸친 대학살을 감행했다. 사람들은 쫓겨서 한곳으로 모였고 어떤 청장년 남성은 포박당한 채 일본병사 몇명에게 연행되었다. 여성 한명이 무릎을 꿇고 무엇인가 기도하는 듯 싶었다…소리도 없고 컬러도 없는 짧은 몇십 초 영상이었다.
80년 전, 미국의 한 전도사가 해상도가 높지 않은 이 영상을 찍었다. 그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16미리 캠코더로 비밀리에 일본군의 폭행을 찍었다. 이 필름은 지금까지 보존된, 난징대학살과 관련된 유일한 동적 화면이고 일본군의 만행을 폭로하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유력한 증거다. 대학살 기간, 그는 국제적십자회 난징위원회 이사장과 난징안전구역 국제위원회 위원을 담당하면서 난민과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는 병원을 설립하고 도살에 직면한 20여만 명의 중국인을 구원하는 행동에 참여했으며 난징에 남은 20여명의 서방 국가 인사들과 함께 감동적인 인도주의의 한 장을 남겼다.
이 위대한 미국인은 바로 존 마지다. 80년이 지난 오늘, 난징대학살기념관을 찾은 그의 손자 크리스 마지는 마치 조부가 이 땅에 남긴 흔적을 찾아보려는 듯 조부의 동상 앞에서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기념관은 전문 존 마지를 위해 전시구역을 개설했다. 동상 외에, 그가 일본군의 폭행을 촬영한 캠코더, 중화국민 정부가 그에게 진서우(襟綬)징싱(景星)훈장을 발급한 증서도 같이 전시되었다. 옆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서는 그의 위대한 사적을 띄우면서 사람들에게 그가 난징 민중을 보호하고 침략자의 잔포한 악행을 기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화민국 정부가 존 마지에게 진서우징싱훈장을 수여한 증서가 유리 전시대 안에 비치되어 있다. [촬영/ 신화망 기자 왕산닝(王珊寧)]
크리스 마지는 본인과 중국의 인연이 아주 깊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홍콩에서 보냈고 누나는 타이완(臺灣)에서 태어났다. 그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난징대학살을 알고 있었어요. 집에 어른들은 아주 어린 아이한테 대학살과 같은 공포스런 이야기를 해주지는 않았지만 제가 점점 커가면서 가족들한테서 조금씩 난징대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고 조부의 과거에서 그때 역사를 알게 되었어요. 제가 홍콩에서 미국으로 돌아간 후, 중국역사를 배우기로 했어요. 그런데 미국의 교과서에는 난징대학살에 관한 내용이 아주 적어 저는 조부의 스토리를 역사 교과서와 연결시킬 수 없었어요. 나중에 중국계 여성 작가 장춘루(張純如)가 쓴 난징대학살에 관한 책이 나왔고 미국에서 벨스트셀러가 되었어요. 이 책을 통해 저는 그때 역사를 완전하게 알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크리스 마지는 올해 8월 중국을 방문했다. 한 미국 감독이 그를 난징으로 초청해 난징대학살과 관련된 다큐 제작에 참여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감격에 겨워 매일 조부가 걸었던 길을 걷고, 그 당시 난징대학살이 발생했던 곳을 보고, 난징 시민들과 대화하면서 마음 속에 있었던 난징대학살과 관련된 조각들이 점점 완전해지고 진실감 나고 선명해 졌다고 말했다.
크리스 마지는 “저는 이곳에 있었던 일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고 영원히 중국인민과 함께 하면서 12월 13일 이 날을 함께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조부의 동상 앞에 선 그의 얼굴에 비친 강인함과 정의는 그의 조부와 아주 흡사했다.
원문 출처: 신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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