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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대학살 생존자 샤수친: 죽은 30만 동포를 대신해 바른말 하고 싶다

출처 :  신화망 | 2017-12-13 09:29:24  | 편집 :  리상화

샤수친(夏淑琴) 할머니

[신화망 베이징 12월 13일] 1929년 5월 난징에서 태어난 올해 88세의 샤수친(夏淑琴) 할머니는 일본에 제기한 최종 심사 소송에서 승소해 배상금을 받는 것을 유일하게 살아서 지켜 본 난징대학살 생존자이다. 2017년 국가추모일을 앞두고 샤수친 할머니는 자신의 경험과 소회를 밝혔다.

“80년을 기다렸는데도 일본정부가 난징대학살을 시인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미국에서 생존자 증언을 찾을 때 그들은 나에게 누구를 대표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난징대학살 기간에 죽은 30만 동포를 대신해 입바른 소리를 하러 왔다고 답했다. 왜냐하면 그 30만 명 중에 우리 가족 7명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1937년 12월13일, 일본군이 쳐들어와 우리 가족 7명을 죽였다. 당시 나는 침상 위의 이불 위에 숨어있었다. 너무 무섭고 놀라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일본군에게 들켰다. 일본군의 칼에 등을 세 번 찔린 나는 바로 기절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4살짜리 여동생이 우는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주위에 식구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우리 둘은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우리는 사방으로 먹을 것을 찾아 다녔다. 집에 볶은 쌀과 누룽지가 있어 다행이었고, 목마르면 물독 속의 찬물을 떠서 마셨다. 이렇게 우리는 가족들의 시체와 14일을 살았다. 가족 9명 중 순식간에 7명이 일본군에게 죽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흘러 눈가를 적신다. 나는 내가 여든 몇 살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지금까지도 이렇게 건강하다. 하지만 나의 임무는 아직 완수되지 못했고, 난징대학살 사건이 일본인들이 한 것이라 시인하게 하지 못했다. 이렇게 오래 기다렸는데도 그들이 시인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원문 출처: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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