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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망 베이징 1월 4일] (후저(胡喆), 위페이(喻菲), 진리왕(金立旺) 기자) 2019년 1월 3일, 인류 최초 달 뒷면에 연착륙한 탐사선 창어(嫦娥)4호가 달 뒷면 남극 폰 카르만 크레이터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착륙 전 과정이 조마조마하면서도 피가 끓어올랐다. 각 측 달 탐사 전문가들은 신화사 기자에게 이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창어4호가 고산준령 같은 곳에 착륙했다”
1월 3일 10시 26분, 달 뒷면의 남극 폰 카르만 크레이터에 중국 창어(嫦娥)4호 탐사선이 인류 최초로 연착륙에 성공했다. [촬영/ 신화사 기자 진리왕(金立旺)]
중국 달탐사공정 총설계사 우웨이런(吳偉仁) 원사는 창어3호가 화북대평원에 착륙했다고 치면 창어4호는 조국 서남부의 고산준령 속에 착륙한 셈이라고 비유 했다.
소개에 따르면, 창어4호의 착륙구역은 창어3호의 8분의 1밖에 되지 않는데다 착륙구역 주변에 해발 10km 되는 높은 산이 있다. 창어3호가 착륙한 달 정면 착륙 구역과 달리, 창어4호가 착륙한 달 뒷면 착륙 구역의 지형 기복은 6,000m에 달해 그야말로 파란만장하고 위험이 꼬리를 물었다고 할 수 있다.
“난이도가 높고 시간이 짧고 위험은 컸다.”우웨이런 원사는 이번 창어4호 달 뒷면 착륙의 두드러진 특징을 이렇게 평가했다. 하지만 위험이 클수록 얻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는 법이다.
창어3호 임무가 성공적으로 완성된 후, 창어4호는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적지 않은 논쟁이 있었다.
쑨쩌저우(孫澤洲) 창어4호 탐사선 총설계사는 “당시 다들 많은 생각을 했다. 달 뒷면에 착륙하는 것 말고 어떤 전문가는 더 멀리 가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그렇게 하려면 탐사선에 많은 변화를 주어야 했다.”고 말했다.
“창어4호는 창어3호의 백업이었기 때문에 많은 부품이 창어3호와 같이 설계하고 생산했기 때문에 설계 면에서 큰 변화를 줄 수 없었다. 여러가지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그래도 달 뒷면으로 가는 방안을 선택했다.”고 쑨쩌저우 총설계사는 말했다.
“달 뒷면에 가는 것이 정면에 가는 것보다 위험이 훨씬 크지만 기술 발전 차원에서 앞으로 우리가 달에 과학연구기지를 세우려면 우주비행 설비가 고정밀도 착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쑨쩌저우 총설계사는 이번 임무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다면 후속적인 우주공간 탐사와 소행성 탐사에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 차원에서의 의미를 제외하고, 폰 카르만 크레이터는 중국에 또 다른 비범한 의미가 있다. 이 크레이터는 20세기 헝가리계 미국 항공역학자 폰 카르만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폰 카르만은 ‘항공·우주비행 시대 과학의 기재’라 불리는 사람이다. 중국 우주사업의 창시자 첸쉐썬(錢學森)과 궈융화이(郭永懷)가 모두 그가 몸소 가르친 제자였다.
창어4호 달 착륙: 감격적인 700초
사진은 창어(嫦娥)4호 착륙선의 감시카메라C로 촬영한 착륙 지점 남쪽의 달 뒷면 영상이다. (국가우주비행국 사진 제공)
10시 15분, 창어4호가 제동 시점에 들어섰다. 7500노트 엔진이 가동되고 동력 하강이 시작되었다. 10시 21분, 랜딩카메라가 열려 달 착륙 전 과정을 찍었다. 10시 25분, 공중 정지 모드에 들어선 창어4호는 잇따라 장애물 회피 모드로 전환되었다.
10시 26분 24초, 가장 감격적인 시각이 다가왔다. 700초에 가까운 달 착륙 과정을 걸친 창어4호 탐사선이 성공적으로 착륙했다.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지휘부에 뜨거운 박수가 터졌다.
창어4호가 달에 착륙하는 순간, 중국항천과기그룹5원 대우주탐사 및 공간과학 수석과학자, 창어1호 위성 총설계사 예페이젠(葉培建, 74세) 원사는 앞줄 업무석에 앉은 창어4호 탐사선 프로젝트 집행총감 장허(張熇)한테로 다가갔다. 두 세대 ‘창어인’이 손을 한데 꼭 잡았다.
이 뜨거운 악수는 창어4호 탐사선 연구팀의 ‘여주인’ 장허로 하여금 얼굴을 손에 묻고 더는 참을 수 없는 감격과 행복의 눈물을 흘리게 했다.
“창어4호가 오늘의 성공을 이룰 때까지 많은 스토리가 있었는데 애초에 많은 사람들은 모험을 주장하지 않았다”며 예페이젠 원사는 기자에게 창어4호는 인류 최초 탐사선의 달 뒷면 연착륙을 실현했을 뿐만 아니라 ‘췌차오(鵲橋)’ 중계위성을 통해 지구와 달 뒷면의 첫 중계통신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이 두가지 ‘최초’는 중국이 이 두 영역에서 손색없는 세계 일인자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바로 수많은 ‘창어인’의 끈질긴 견지가 있어기 때문에 오늘이 있게 되었고 이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예페이젠 원사는 착륙 성공 후, 자기가 장허 집행총감한테 다가가 축하한 원인이 이것이라고 밝혔다.
예페이젠 원사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창어4호 착륙 지점을 달 뒷면으로 정한 시간이 2015년이었기 때문에 개발에 주어진 시간이 매우 타이트했다. 창어4호 개발과 동시에, 창어5호, 화성탐사, 대우주탐사 등을 포함한 여러 과학연구 프로젝트도 긴박하게 추진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연구원들은 몇개 프로젝트 사이에서 ‘여러 직책’을 겸해야 했다. 이는 창어4호 연구팀에 더욱 높은 요구를 제기했고 그들이 받은 압력은 상상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어려움과 도전 앞에서 연구 일선의 ‘창어인’들은 우주비행 선배들이 개척한 ‘양탄일성(兩彈一星)’ 정신을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런 정신을 기반으로 새로운 ‘달탐사 정신’을 수립했다.
2004년 1월 중국의 달탐사 프로젝트가 전면적으로 가동된 이래, 창어 달탐사 프로젝트는 이미 15년 추진되었다. 창어4호 달 착륙의 감격적인 700초 뒤에, 지난 15년의 노력과 견지가 뒷받침 되었다.
달 뒷면을 탐사: 창어4호, 획기적인 발견을 할 수도
창어(嫦娥)4호 탐사선이 달 뒷면에 연착륙 후 랜딩카메라로 찍은 사진(1월 3일 촬영). 2019년 1월 3일 10시 26분, 창어(嫦娥)4호 탐사선이 달 뒷면의 남극 폰 카르만 크레이터에 착륙해 인류 최초로 달 탐사선의 달 뒷면 연착륙에 성공했다. (국가우주비행국 사진 제공)
창어4호가 착륙한 달 뒷면은 도처에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이다. 쩌우융랴오(鄒永廖) 중국과학원 달·대우주탐사 총체부 주임은 달 뒷면은 특성이 독특하고 창어4호가 착륙한 곳은 종래로 탐사한 적 없는 처녀지이기 때문에 획기적인 발견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주탐사선이 없는 시대에 달 뒷면은 줄곧 미지의 신비로운 세계였다. 갈수록 많은 탐사선이 달로 가게 되면서 사람들은 달 뒷면과 정면이 이렇게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창어4호가 착륙한 달 남극 폰 카르만 크레이터는 태양계에서 이미 알고 있는 가장 큰 크레이터 중 하나이고 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크레이터라고 공인되고 있다. 이곳에서 달 심층 물질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과학적으로 아주 큰 발견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과학가들은 달 남극 폰 카르만 크레이터는 달 심층 물질의 구성을 연구하는 중요한 창구이고 이 크레이터에 대한 탐사는 달 크러스트와 달 맨틀의 구성, 달의 지질 특성, 달의 기원과 연혁 등을 연구하고 달의 자기 이상을 해석하는데 도움될 것이라 보고 있다.
쩌우융랴오 주임은 월면차가 달 뒷면에서 행진하면서 지형과 지모, 물질성분, 옅은 층의 구조 등을 통합한 종합적인 지질단면을 확보할 수 있고 이 단면이 형성된다면 글로벌 최초의 성과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동시에, 달 뒷면에서 저주파수 전파천문 관측을 진행하는 것은 천문학자들의 오래된 꿈이고 전파천문학 분야 저주파수 관측 구간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이런 천문 관측은 태양, 행성 및 태양계 외부 천체를 연구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항성의 기원과 성운의 연혁 등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원문 출처: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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