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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푸둥 개발개방의 역사적 새방위

출처: 신화망 한국어판 | 2015-04-17 14:07:18 | 편집: 리상화

(浦东开发开放25周年·图文互动)(1)浦东开发开放的历史新方位

   사진은 상하이 푸둥 양안의 모습이다(2013년 8월 3일 촬영) [촬영/ 신화사 기자 페이신(裴鑫), 번역/ 리상화]

   [신화사 상하이 4월 17일] 25년 전, 기상천외하게만 여겨지던 푸둥(浦东) 개발개방이 세계에 역사적 전환점에 선 중국이 어떤 기치를 들고 어떤 길로 나아갈지를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25년 후의 오늘날 흔들림과 태만이 없이 추진되온 푸둥 개발개방의 창구역할과 시범 의의가 보다 뚜렷해졌다. 오늘날의 푸둥은 선구자중의 선구자, 선행자중의 선행자로서 개혁개방의 위대한 기치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수비수에서 공격수로, 푸둥 개혁개방의 선두주자가 되다

   중국을 지난 30여년 간 전 세계에서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열차에 비유한다면 상하이(上海) 푸둥신구는 가장 막강한 동력을 보유한 엔진중의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아마 알고 있는 사람이 아주 적을 것이다. 오늘날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루자주이(陸家嘴)가 개발개방의 초기에는 발길이 드물었다는 점을 말이다. 1993년에 이르러 푸둥에서 솔선수범으로 “토지는 실제로 양도되고 자금은 유휴되는(土地實轉、資金空轉)” 토지개발 패턴을 시도하면서 깊이 잠든 이 땅을 깨웠다. 오늘날의 루자주이 금융타운에는 88동의 세수 “억위안 빌딩”이 들어섰으며 이중 10동은 연간 세수액이 10억위안을 초과한다.

   푸둥의 개발개방은 효과적인 개혁의 길을 개척했다. 그것은 바로 국가 전략의 시달과 지방의 자주 개혁을 서로 결합한 것이며 자주적으로 국가전략을 개혁, 관철, 시달한 것이다.

   25년간 푸둥에서 추진한 개혁사안은 수백항에 달했지만 그 성공율은 아주 높았으며 “부침개를 뒤집 듯” 뒤엎어지는 현상이 극히 드물었다. 그 이유는 푸둥에서 시종일관 개혁방향과 국가전략의 상호 결합을 견지했고 개혁통로와 의법치국의 결합을 견지했으며 신호 위반, 명예 추구에만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특별한 개혁 방법론이 푸둥이라는 이 개혁의 고지를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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