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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일본 “응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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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화망 한국어판 | 2015-07-27 09:00:28  | 편집 :  서위

   [신화사 베이징 7월 27일] 난징(南京) 도심 신제커우(新街口)지역의 신화서점에서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하는 도서들이 가장 눈에 띄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회전식 계단에 설치된 도서벽에는 두텁고도 무거운 난징대학살 사료문헌이 세트별로 진열되어 있다.

   78년 전 난징은 중국 침략 일본군의 가장 참담한 폭행을 입은 도시이며 도륙과 더불어 약탈, 방화와 강간까지 이뤄졌다. 30여만명이 조난당했고 약 3분의 1에 달하는 건축과 재산이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오늘날 그젯날의 인간지옥이 다시 한번 번화한 도시로 부상했다. 1978년부터 난징은 나고야와 우호도시 관계를 맺었다. 중국과 일본은 이곳에서 또 다른 교류를 추진했다.

   난징시 투자촉진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국가(지역)가 난징에서의 투자 랭킹에서 일본은 Top10안에 꼽히며 다만 경제와 시장형세의 변화로 인해 최근 몇년간의 투자가 다소 하락됐다.

   장스웨이(張思為)(가명)는 대학교 재학 시기 처음으로 일본을 찾아 관광하게 됐으며 현지의 상황은 그가 일본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통해 요해해온 일본과 큰 구별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친절한 사람도 있었고 냉담한 사람도 있었으며 세계상의 그 어떤 지역과도 다르지 않았다.”그녀의 말이다.

   그러나 이곳은 어디까지나 난징이다. 난징의 역사적 조우는 오늘날까지도 없앨 수 없는 상처마냥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일부 사람들에게 영향주고 있다.

   난징외국어학교는 장수(江蘇)성의 중점 중학교이고 현지인들 마음 속 가장 이상적인 중학교 중의 하나이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어 4가지 어종의 과정을 개설했다. 포털 사이트에 따르면 2015년에 총 320명을 모집했지만 일어반의 학생 모집은 결코 쉽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8년 사이 난징외국어학교 일어반에서 공부한 양루이(楊蕊)(가명)는 일어반은 일년에 15명 좌우의 학생들만 모집하고 있는 상황이며 중일관계의 미묘한 변화와 더불어 이 데이터는 때로는 많이, 때로는 적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난징외국어학교의 한 일어반 교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난징이라는 이 중일관계에 아주 민감한 도시에서 일부 학부모는 정서적으로 그때 당시 일본 침략자가 난징사람들에 대한 대학살을 접수하지 못하고 있고 일본의 우익세력이 역사 사실을 부인하는 태도까지 겹쳐지면서 아이들을 일어반으로 보내는 것을 원치않고 있다.”

   궈비창(郭必強) 중국 제2역사기록관 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화의 염원에서 출발한 난징 사람들은 일본 우익이 대학살을 부정하는 데 대해 큰 불만을 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주변에서 발생한 사실에 대해 이들이 승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의 일부 사람들이 평화에 대한 성의가 부족하다 보고 있다.” [글/ 신화사 순샤오정(孫曉錚), 샤펑(夏鵬), 참여기자/ 바이쉬(白旭), 린카이(林凱), 번역/ 신화망 한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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