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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항전이 세계반파시즘 전쟁에서 가지는 위치와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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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민망 한국어판 | 2015-08-08 08:44:20  | 편집 :  왕범

태아장(타이얼좡)대전 자료사진

   전쟁 당시 중국은 세계반파시즘 4개국의 하나로 중국의 전쟁터가 바로 아시아의 주요 격전지이자 세계반파시즘 주요 격전지의 하나였다. 그러나 냉전으로 인해 전쟁 후 70년간 중국의 세계반파시즘 전쟁에서의 중요한 위치와 역할은 서방 세계로부터 홀대를 받아 합당한 존중을 받지 못했고, ‘잊혀진 전우’가 되었다. 이는 불공정한 처사다.

   1. 중국은 세계 최초로 파시즘 침략에 저항한 나라로 세계 최초로 반파시즘 전쟁이 발발했다.

   20세기 2, 30년대 파시즘은 이탈리아, 일본 및 독일로 이어진다. 이들 국가는 망설임 없이 침략전쟁을 일으키며, 세계 위에 군림하고 전인류를 발 아래 두려고 했다. 1931년 일본 파시즘은 ‘9.18사변’을 일으켜 중국 침략전쟁을 시작한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연 데 반해 중국은 항일전쟁을 시작했다. 따라서 중국은 세계 최초로 반파시즘의 깃발을 내건 셈이다.

   중국 전민족 항전 개전 후 중국은 전면전과 후방전을 통해 일본군을 두 개 전선으로 나뉘게 해 장기전에 빠지게 만들었다. 따라서 일명 ‘속전속결’의 전략을 깨뜨리는 일례를 가져왔다. 우한회전(武漢會戰)을 계기로 중일전쟁은 버티기 단계로 돌입했다.

   2. 중국의 전쟁터는 시종일관 일본의 육군 병력을 저지한 아시아 반파시즘의 주요 격전지다.

   중국의 완강한 저항이 일본의 속전속결 침략전략을 깨뜨려 일본은 어쩔 수 없이 점점 병력을 증강했다. 우한회전 당시에는 일본의 육군 34개 사단 중의 32개 사단, 즉 94%의 병력과 해군 일부 병력이 중국 전쟁터로 투입되었다.

   중국의 전면전과 후방전의 상호 공조로 시종일관 일본 육군 병력을 저지하였다. 데이터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에 일본 육군 총 병력이 51개 사단, 이중 중국에 35개, 동남아에 10개로 일본 육군의 70% 가까운 병력이 중국 전쟁터로 몰려 태평양전쟁에 동원된 병력은 20%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쟁 종료 당시에도 중국 전쟁터의 일본군 수가 태평양 전쟁터를 훨씬 능가했다.

   1945년 1월 6일, 당시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우리는 중국인들이 어떻게 7년이 넘는 오랜 시간 일본인들의 야만적 공격에 대항해 아시아 대륙땅에서 수많은 적군을 막아냈는지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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