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無反顧(의무반고)
◎글자풀이:옳을 의(義yì), 없을 무(無wú)자, 돌이킬 반(反fǎn), 돌아볼 고(顧gù)
◎뜻풀이: 정당하고 합리한 일이라면 되돌아서지 않고 곧추 앞으로 나감, 정의를 위하여 주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유래:
임공(臨筇)의 큰 부자인 탁왕손(卓王孙)은 딸 탁문군(卓文君)이 사마상여(司馬相如)와 몰래 도망쳤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내가 얼마나 창피해질까? 이런 불효막심한 자식을 두다니, 내 딸이라 차마 죽이지는 못하겠지만 내 재산은 한 푼도 남겨주지 않겠다."며 대노했다.
탁문군과 사마상여는 성도(成都)에서 임충으로 돌아와 자신이 갖고 있던 마차를 팔고 칸이 여러 개 딸린 집 하나를 마련해 자그마한 술집을 차렸다. 탁문군은 자기가 직접 가게를 돌보았으며 사마상여는 아예 옷을 갈아입고 그릇을 씻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며 손님들을 접대했다.
전 현에서 대부호의 딸이 술집에서 술장사를 하고 사천의 재자(才子)로 불리는 남자가 그릇을 씻는다는 말을 들은 임충사람들은 술을 마시거나 또는 탁문군의 모습을 보기 위해 앞 다투어 술집에 모여들었다.
덕분에 술집장사는 눈에 띄게 잘되어 현성을 들썽케 했다.
이 일은 어느덧 탁왕손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딸과 사위가 술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차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던 탁왕손은 친척과 벗들의 충고를 듣고 딸에게 큰돈과 함께 십여 명의 종들을 보내면서 술장사를 그만할 것을 권고했다.
그때부터 사마상여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면서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제(景帝)가 병으로 죽자 아들 유철(劉徹)이 왕위를 계승했는데 그가 바로 한무제(漢武帝)였다.
한무제는 부친과는 달리 문학에 애착이 있었고 특히 사와 부(辭賦)에도 관심이 있었다.
마침 사마상여의 『자허부(子虛賦)』를 보게 된 한무제는 이 문장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사마상여를 한번 만나고 싶어 했다.
한무제를 만나게 된 사마상여는 "폐하께서 소인의 『자허부』를 즐기신다 들었사옵니다. 실은 저에게는 이 문장보다 더 뛰어난 『상림부(上林赋)』라는 글이 있사옵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상림부』를 읽었던 한무제는 사마상여의 뛰어난 재능에 대해 더욱 믿음이 가는지라 그에게 관직을 내주고 궁에 남으라고 권했다.
몇 년 후 한무제는 당몽(唐蒙)을 파견해 서남통로를 개통하게 했다. 귀주(貴州)와 사천(四川)의 지방 관리들은 이 기회를 빌어 백성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안겼고 당몽은 지방 관리들의 이와 같은 행동을 오히려 부추겼다. 그 본인은 더욱 잔인했는데 제정된 세금을 완성하지 못한 마을의 우두머리를 죽이는 등 행동까지도 서슴없이 저질렀다.
많은 소수민족들이 불안에 떨었고 무력으로 충돌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며 사천은 혼란에 빠졌다.
장안에 이 소식이 전해지자 한무제는 이 일을 중시했다. 그는 사마상여에게 "조정은 당몽과 지방관리들의 처사를 엄히 징계할 것이다. 이들의 처사는 조정의 뜻과 어긋난 것이다."라는 조정의 뜻을 전해 그곳의 소수민족들을 위로하도록 했다. 사마상여는 통지문에 "사천의 여러 민족은 변강을 엄수하라. 적정을 발견하면 앞장서 적진으로 돌격하며 정의를 위해 주저하지 말라(의무반고)"고 썼다.
서남의 정세를 더욱 안정시키기 위해 사마상여는 한무제의 명을 받들어 중랑장(中郎將)의 신분으로 고향에 돌아가 황제가 맡긴 임무를 출중하게 완성했다.
'의무반고(義無反顧)'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사자성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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