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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망 홍콩 6월 30일] (마오쓰첸(毛思倩), 왕잉후이(王迎暉) 기자) “홍콩 회귀 그날 오후, 저는 마침 뤄후 출입국관리사무소(Luohu Port)에 와서 인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로비에 걸린 오성홍기를 보았을 때 가슴 벅차 오르던 감격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요.” 뤄후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다리 어귀에 서서 탄웨이간(譚偉干)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탄웨이간은 홍콩 입국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다. 1997년 그는 뤄후 관제소(Control Point), 즉 내지에서 익숙한 뤄후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선전과 홍콩을 오가는 관광객의 증명서를 검사하다가 후에 입국사무처에서 홍콩의 여러 관제소로 파견되어 일했다. 20년 후 그는 다시 뤄후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돌아와 홍콩 뤄후관제소 총입국사무 보조로 일하면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출입국 업무를 조율하고 있다.
그는 뤄후 출입국관리사무소의 20년 변천사를 목도했다. “이 20년간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상전벽해라는 말처럼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라고 그는 기자에게 말했다.
홍콩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통계에 따르면 1997년 매일 15만 명이 넘는 인파가 뤄후 출입국관리사무소를 통해 홍콩을 출입했다. 2016년까지 다른 새로운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분산되었지만 하루 평균 22만 명이 넘는 인파가 뤄후 출입국관리사무소를 거쳐 홍콩을 출입해 뤄후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여러 출입국관리사무소 중 1위를 차지했다. 오늘날 뤄후에서는 당시 그가 들고 다니던 작은 금고가 보이지 않는다. “안에 있는 크고 작은 10여 개의 도장을 다른 종류의 여행객 증명서(여권)에 찍었어요.
2013년, 홍콩은 쾌속 프린트 입국 스탬프를 사용해 원래 최소 1분이나 걸리던 인공 날인 절차를 대체했다. 하지만 이도 매일 넘쳐나는 관광객의 통관 수요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탄웨이간과 동료들이 십 수년간 앉아있던 카운터에는 점차 첨단 과학기술 대체품이 놓였다.
2004년 홍콩 입국사무처는 뤄후 관제소에서 가장 먼저 3개의 ‘e통로’를 만들었다. 지문인식 등 과학기술 수단을 통해 홍콩 주민이나 이미 등록한 홍콩 방문 관광객은 셀프로 통관수속을 할 수 있어 20초면 ‘e통로’에서 검사 절차를 마칠 수 있다.
기자는 뤄후 출입국관리사무소 입국 로비에서 20년 전 탄웨이간이 일하던 카운터를 보았다. 지금은 새로운 ‘e통로’로 대체되어 더 이상 도장 찍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셀프 통로의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통관능력이 강화되고 효율이 더 높아졌을 뿐 아니라 선전과 홍콩의 경계를 따라 육로 출입국관리사무소 수도 많이 늘었다. 기존의 뤄후, 뤄마저우(황강), 원진두와 샤터우자오 4개 육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기초에서 올해 선전항과 푸톈(뤄마저우 지선 관제소) 출입국관리사무소가 개통되었다.
회귀 20년 동안 각각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출입한 홍콩 총인구는 1997년 1억여 명에서 2016년 대폭 상승해 3억 명에 육박했다.
국경선을 따라 세워진 수로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마치 지퍼처럼 홍콩과 선전을 하나로 연결해 두 지역은 점점 동쪽으로 들어가 동쪽으로 나오고, 서쪽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나오는 대통관 구도를 실현하고 있고, 매일 두 지역 출입국관리사무소를 거쳐 통행하는 물류도 빠르게 증가하면서 두 지역의 경제무역 왕래는 더욱 빈번하고 긴밀해지고 있다.
선전 출입국관리사무소는 홍콩 시민 식품의 중요한 보급 통로이다. 통계에 따르면 선전 관할지역이 홍콩에 공급하는 신선제품의 상품가치는 1997년 69억 위안에서 2016년 237억 위안으로 증가했고, 연평균 성장률은 6.7%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야채, 과일의 연평균 성장률은 평균 10%를 초과했다.
뤄후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넘쳐나는 관광객을 보면서 탄웨이간은 “다시 20년이 지나면 또 다를 것입니다. 퇴직을 해도 자주 와볼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원문 출처: 신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