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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군90주년) 첫 항공학교: 동북민주연합군항공학교, 인민공군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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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화망 | 2017-07-10 09:36:03  | 편집 :  주설송

(자료 사진)

[신화망 베이징 7월 10일] (메이스슝(梅世雄), 해방군보 기자 마오쥔(毛俊))  1946년3월1일, 동북민주연합군항공학교(‘동북노항교’)가 지린(吉林) 퉁화(通化)에서 정식 설립됐다. 이는 중국 공산당 영도 하의 인민군대가 창설한 첫 항공학교이다.

훗날 ‘동북노항교’는 ‘인민공군의 요람’으로 여겨졌다.

“‘동북노항교’ 설립은 당중앙과 마오 주석의 전략적 안목을 보여주었다.” 설립 초기 ‘동북노항교’ 부정위(副政委)를 맡았던 황나이이(黃乃一)는 일본이 투항한 후 당중앙과 마오 주석은 일부분의 부대와 간부를 동북으로 보내는 동시에 옌안에 비축한 항공 인재를 동북에 파견하는 것을 신속히 결정하고 일본군이 남겨 놓은 공항과 항공기, 항공기자재를 이용해 항공학교를 설립해 인민공군의 ‘씨앗’을 양성했다고 회고했다.

항미원조전쟁중 ‘동북노항교’의 명성은 널리 퍼졌다. 공군1급 전투 영웅5명 중 왕하이(王海), 장지후이(張積慧), 류위티(劉玉提) 3명이 ‘동북노항교’ 출신이다. 리한(李漢), 쩌우옌(鄒炎), 왕톈바오(王天保), 가오웨밍(高月明) 등 졸업생 4명은 ‘2급 전투영웅’ 칭호를 받았다. 1951년1월29일, 리한은 인민공군으로서는 최초로 적기를 격추시켰다.

71년간 인민공군은 이미 당시의 ‘마라 항공기’ ‘알코올로 휘발유를 대신’ 한 것에서 다양한 병과와 다양한 기종으로 구성된 현대화 군별로 발전했다. 한편 ‘동북노항교’ 정신은 대를 이어 전해지는 소중한 ‘가보’로 여겨졌고, 새로운 내포와 외연이 끊임없이 부여되었다.

원문 출처: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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