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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월 8일,중공중앙 항일 공개전보 발표

출처: 중국국제방송국 | 2015-02-02 16:39:50 | 편집: 전명

   오늘은 1월 8일입니다. 1937년의 이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내전의 평화적 휴전을 호소하기 위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및 소비에트 중앙정부의 공개전보"를 발표했습니다.

   이 공개 전보는 중국공산당의 항일견지 주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 공개 전보는 서안사변의 평화적 해결 이후 반달만에 발표된 것입니다.

   1936년 12월 12일 서안사변이 발발했습니다. 장학량(張學良)과 양호성(楊虎城)의 요구에 응해 주은래(周恩來), 박고(博古), 엽검영(葉劍英) 등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대표들이 서안에 도착해 항일하도록 장개석(蔣介石)을 압박하고 서안사변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침을 확고히 관철하기 위해 적극 노력했습니다.

   서안사변이 평화적으로 해결된 후 1937년 1월 8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소비에트정부는 평화와 내전 휴전을 호소하는 공개전보를 발표해 중국공산당과 소비에트 중앙정부의 "내전 중단, 일치 항일"의 일관된 주장과 확고한 입장을 재 천명했습니다.

   2월 10일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는 <국민당 제5기 대표대회 제3차 전원회의에 보내는 전문>에서 5가지 요구와 4가지 담보사항을 제기했습니다.

   5가지 요구는 내전을 멈추고 중국의 힘을 모아 일제히 대외침략에 맞서며 언론과 집회, 협회 설립의 자유를 담보하고 모든 정치범의 석방을 담보하며 각 당, 각 파벌, 각계, 각 군 대표회의를 열어 전국의 인재를 집중해 공동으로 나라를 구하며 항일 작전에 관한 모든 준비를 신속히 끝내고 인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전문은 국민당이 이를 국책으로 받아들일 경우 중국공산당은 4가지를 담보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즉, 전국적인 범위에서 국민당정부를 전복하는 무장폭동방침을 중단하며 근로자농민정부를 중화민국특별구정부로, 홍군을 국민혁명군으로 개명하고 특별구에서 철저한 민주제도를 실시하며 지주의 토지몰수정책을 중단하고 항일민족통일전선 공동강령의 확고한 실행을 담보하는 것입니다.

   민족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큰 양보를 하는 중국공산당의 애국열정은 국민당 좌파 및 애국군중들의 옹호와 찬양을 받았습니다.

   1937년 5월 연안(延安)성의 남문에는 국민당중앙고찰단을 환영하는 슬로건이 높게 걸렸습니다. 중국공산당에 대한 이해를 늘리고 국공합작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태도를 알아보기 위해 도사종(涂思宗)이 인솔한 국민당 중앙고찰단이 연안에 도착했습니다. 고찰단은 연안의 당과 정부, 군대 등 여러 기관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이로부터 국공 양당간의 상호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8월 상순, 국민당의 초청에 의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주은래와 주덕, 엽검영을 국방회의에 파견하고 국민당과 계속 협상하게 했습니다. 8월 22일 국민정부 군사위원회는 홍군 주력을 팔로군으로 개편한다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울러 10월 12일에는 호남, 강서, 복건, 광동, 절강, 호북, 하남,안휘 등 8개성의 홍군유격대를 신사군(新四軍)으로 개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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