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한국 서울에서 박근혜 한국 대통령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초대회에서 축사하고 있다. 이날 박근혜 한국 대통령이 주 한국 일본대사관이 서울에서 거행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초대회에 참석했다. (번역/ 서위)
[신화사 도쿄 6월 24일] 1965년 6월 22일, 일본과 한국이 《일한기본조약》을 체결했으며 한국이 1910년 일본 식민지로 저락한 이래의 양국 국교 정상화를 실현했다. 반세기 이후의 오늘날, 역사적 마찰과 영토 분쟁 등 문제를 둘러싸고 일한 관계가 국교 정상화 이래의 최저점으로 떨어졌다.
21일, 일한 외교 장관이 4년만에 회담을 가졌다; 2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박근혜 한국 대통령이 도쿄와 서울에서 각각 상대국 대사관에서 주최한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나 일한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의 상처와 현실의 갈등은 여전히 심각하다.
대부분 역사 학자들의 공동 결론은: 일한 국교 정상화는 냉전 배경과 미국의 강대한 압력 아래에 실현된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냉전수요가 한국정부와 국민이 일본 식민통치에 대한 정산, 배상요구를 억눌렀다.
1993년의 “고노담화”와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발표는 전후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과 관련된 두개의 측간이다. 그러나 그때 당시 두 “담화”는 우익 보수 세력의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기존 “위안부”들이 요구한 책임인정, 사죄, 법정 배상, 역사 교육 역시 줄곧 시달되지 못했다.
아베정권이 집권한 후 역사 문제에 있어서 분명하게 역행하고 있으며 역사 문제가 다시한번 일한 관계, 동아시아지역 형세를 어지럽히는 핫이슈가 되게 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세상에 남은 기존 “위안부”들의 연세가 점점 많아지면서 일본이 역사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법에 점점 더 큰 우려와 분노를 보이고 있다.
바로 일한 “역사전”이 교착 상태에 머물러 있던 올해 5월,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한국 방문 기간 한일이 역사 문제를 극복하고 다시 대화할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그러나 그때 당시와 똑같이 미국은 개관적으로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아닌 “이익관련(利益攸關)”에서부터 출발해 일한관계에 간섭하고 있다.
이는 50년 전의 타협이 남긴 화근과 똑같이 일본과 한국 사이의 역사문제는 이로 인해 자동으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아베정권이 역사 수정주의의 길에서 역주행하고 있는 배경 아래 미국이 자국 이익의 수요에서부터 출발해 역사문제 자체의 시비곡직을 무시한 채 사리로 공리를 억누르고 일한관계를 강제적으로 중재하는 것은 어쩌면 무궁무진한 후환만 남길 것이다. [글/신화사 기자 펑우융(馮武勇), 류시우링(劉秀列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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