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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항산 골짜기에 울려퍼진 역사의 메아리——중외 기자 팔로군 본부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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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화망 한국어판 | 2015-08-07 09:35:38  | 편집 :  동소교
    [신화사 타이위안(太原) 8월 7일] 산시(山西)성 우샹(武鄉)현 좐비(磚壁)촌은 팔로군 본부의 소재지였다. 항일전쟁이 승리한지 70년이 지난 오늘, 수십명 중외 기자들이 좐비촌을 찾아 팔로군이 일본 침략자들을 저항하며 반격한 스토리를 탐방하고 당시의 팔로군 장교와 사병들의 진실한 생활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1939년 7월 부터 1942년 5월 까지 주더(朱德) 총사령이 팔로군 장병들을 인솔해 세차례나 이 4000여명에 불과한 인구를 보유한 마을에 들어왔다.

    1940년, 팔로군 장령들이 좐비촌에서 중외를 놀랜 백퇀대전(百團大戰)을 지휘했다. 이는 항전 기간 중국공산당이 영도한 최대 규모, 지속 시간이 가장 긴 전역이였으며 2만여명에 달하는 일본군과 5000여명에 달하는 괴뢰군을 살상해 전국 인민들에게 항일전쟁승리의 자신감을 북돋아주고 국민당이 영도하는 정면 전장을 유력하게 지지했다.

    중국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에 즈음해 국무원신문판공실에서 최근 영국, 일본, 중국 내지 및 홍콩에서 온 26개 언론의 기자들을 조직해 이 작은 마을을 찾아 항일전쟁 체험자를 취재했다.

    취재진 성원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 일본 교도통신, 유럽EPA(European Pressphoto Agency), 일본 마이니치 신문 등 여러 해외 주류 언론의 여러명 기자를 포함했다. 일부 일본 기자들은 중국항전에 관한 보도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산시 우샹현을 찾아 인터뷰를 한 것도 처음이 아니라고 답했다. 장후이(張慧) 홍콩 봉황 TV(Phoenix Television) 기자는 가장 기층에서의 인터뷰, 체험자의 목소리를 통해 가장 진실한 역사를 환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어르신, 그때 당시 어르신이 일본인에 대한 인상을 얘기해줄 수 있나요?”인터뷰가 문답 고리에 들어서자 홍콩 케이블텔레비전(HKCATV) 기자가 처음으로 87세 노인 샤오장허(肖江河)에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때 당시 일본 군인들이 바로 산 건너편에서 왔다갔다 했다네.” 이말을 하면서 샤오장허의 얼굴에는 순간 고통스러운 표정이 나타났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일본놈들이 토굴집에서 우리 마을 촌민 다섯을 죽이는걸 목격했지요.”

    역사는 전승해야 하며 이야기는 지속되어야 한다. 인터뷰가 거의 마감될 즈음 샤오장허 노인은 주변에 모인 기자들과 관광객들을 둘러보며 “나는 국내외 친구들을 아주 환영하네. 당신들과 같은 기자들도 말일세. 나를 찾아와 팔로군의 이야기를 듣고, 물론 내 이야기도 함께 들어주니 말이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 체험자인 샤오장허 노인은 다음과 같은 소원을 드러내보였다: “유사 이래로 전쟁은 모두 가장 잔혹한 것이였네. 나는 중일 양국이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시종일관 평화롭게 지낼 수 있기를 희망하네.” [글/신화사 기자 자오시우즈(趙修知), 번역/신화망 한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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