集思廣益(집사광익)
◎글자풀이: 모일 집(集), 생각할 사(思), 넓을 광(廣), 더할 익(益)
◎뜻풀이: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유래 :
제갈량은 스물일곱 살 나던 해에 유비를 보필하며 출사했다. 그후 스무 해 동안 중원(中原) 일대를 통일하고 업적을 마련하는 일에 온 열정을 쏟아부었다. 한(漢)나라 왕실을 부흥시키고 중원을 평정하기 위해 제갈량은 여섯 차례나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하였다. 북벌을 시작하기 전에는 돌발적인 습격을 당할까 우려하여 대군을 이끌고 호수(沪水)를 건너 오지로 들어가 그곳에 사는 이민족들을 위로하며 연맹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민족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남만 지역의 왕인 맹획(猛獲)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모두 풀어준 일화도 유명하다. 이에 감격한 맹획은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맹세했다.
"우리 남인(南人)은 앞으로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승상께서 마음을 놓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쉰 살이 되던 해에 제갈량은 남부 지역을 평정하고 얼마 뒤 위(魏)나라 진공에 나섰다. 출병을 앞두고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걱정해 제갈량은 촉(蜀)나라 후주(後主)인 유선(劉禪)에게 진심이 가득 담은 상주문(上奏文)을 올렸다. 표문(表文)에는 위, 촉, 오 삼국의 정세를 상세히 분석하고 촉군의 전략을 제안하였는데 나라에 대한 충성과 백성을 걱정하는 제갈량의 정성이 구구절절 배어있었다.
아무리 치밀한 작전이라 할지라도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닥치기 마련, 첫 북벌에서 대장 마속(馬謖)의 어긋난 행동 때문에 가정(街亭) 땅을 잃고 대패하고 돌아왔다. 두 번째 진창(陳倉) 전투에서 식량이 바닥나 제대로 된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패하여 퇴각하였다. 포기할 수 없었던 제갈량은 또 한번 시도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진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제갈량은 통찰력이 뛰어나고 계획적이며 지혜롭기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결코 자만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았고 여러 관료의 의견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모든 일은 문무대신들과 의논한 뒤 결정하였으며 그에 따라 문고를 작성하고 반포했다. 그는 대신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해결해주었으며 진실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주군에 이익이 되는 의견은 널리 받아들이고 집사광익(集思廣益), 즉 많은 사람의 지혜를 모으고 정확한 의견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서신을 쓰기도 했다.
평소에도 문무백관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타인과의 논쟁을 피하고자 의견제시를 꺼린다면 군주의 눈과 귀가 어두워져 유익한 의견을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는 조정에 막심한 손해이다. 우리는 동유재(董幼宰)를 따라 배워야 한다. 그가 정사를 돌보는 7년 동안 미흡한 점이 있으면 사람들이 주의를 돌릴 때까지 끊임없이 지적해왔다. 그 횟수가 무려 십여 차례나 되었다. 우리가 동유재처럼 돌이켜 검토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잘못된 결정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조정과 백성에게 도움이 되어야 좋은 대신이라 생각했던 제갈량은 많은 사람의 지혜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자신을 요구하고 다잡았다. 그러던 그는 234년 여섯 번째로 출정한 기산 전투에서 54세를 일기로 결국 병사하였다.
사자성어 "집사광익(集思廣益)"은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뜻하는 말로 바로 제갈량이 부하들에게 쓴 편지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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