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시진핑
13일 저녁, 웨이신 공공계정 ‘학습소조(學習小組)’에 실린 ‘시진핑 자서전: 나의 문학 인연’은 게재되자마자 국내외 여론의 이슈로 떠올랐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문예공작간담회 주재 및 중요 연설 발표 2주년에 즈음하여 발표된 ‘자서전’ 은 '연설’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다. 시 주석은 15곳의 다른 장소에서 강연한 일화를 이용, 젊은 시절의 독서와 문단 교류, 문학과 예술 관점을 친절한 옆집 아저씨 같은 어조로 맛깔나게 이야기 했다.
정치가들은 모두 취미를 가지고 있고, 이는 매우 개인적인 일이다. 하지만 정치가가 적당한 타이밍에 자신의 취미를 공개한다는 것은 공공성을 고려한 것이다. 유도, 스키가 수준급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정상은 심신이 건강하고 의지가 강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일상생활 사진들을 공개해 금슬 좋은 부부의 모습, 보좌관들과 농구를 하거나 백악관에서 강아지와 조깅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퇴임 전 대중에게 대통령의 가치관을 다시 한 번 광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이 문학을 좋아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번에 공개된 내용들은 더욱 다양하고 재미있다. 한 편의 글은 하나의 창구로 우리는 이를 통해 더욱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인의 독서는 세계지향적이다. 시진핑 주석은 1950년대에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열악한 독서 환경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두루 섭렵해 중국 고전은 물론 러시아,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 국가의 명작들을 읽었다. 이로 보아 대량의 독서와 대외 교류를 통해 그는 젊은 시절부터 세계 각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상당한 일가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이런 세계지향적인 독서 이력은 오늘날 중국의 대외관계 결정 중의 중요한 차원을 형성했다.
둘째, 문학은 중국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시진핑은 자신은 악비(岳飛) 이야기를 읽고 ‘정충보국(精忠報國)’을 평생 추구할 목표로 세웠고,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고 주인공에게서 의지를 단련시키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중국인은 예로부터 영혼을 살찌우고 지혜를 깨우치게 하는 문학의 역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초사(楚辭), 한부(漢賦), 당시송사(唐詩宋詞), 명청소설로 이어지는 문학 작품에는 호방하거나 완곡∙함축적 혹은 비분, 유머적인 내용들이 실려있어 중국인의 정서는 문학 세계에서 도야되고, 의지는 문학 세계에서 승화되었다. 오늘의 중국을 관찰하면 정치, 경제 외에 문학 예술은 더 생동적이고 감성적인 존재임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중국 국산영화 ‘메콩강행동(湄公河行動)’을 보고 나서 중국이 마약 퇴치와 자국의 주권∙인권 수호 문제에서 내린 결단과 의지를 더 실감나게 느낄 수도 있다.
셋째, 문학은 현재 중국의 대외 교류 중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시진핑은 외국 순방에서 중국과 순방국의 문학 경전을 인용해 화제의 물꼬를 튼다. 왜 외국인과 문학을 이야기해야 할까? 문학과 예술은 세계어로 문학과 예술을 논하는 것은 사실 사회, 인생을 논하는 것으로 서로 이해하고 마음을 소통하기가 가장 쉽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파우스트(Faust)’를 이야기하고, 토미슬라브 니콜리치 세르비아 대통령과는 영화 '발터, 사라예보를 보위하다(원제 Valter brani Sarajevo)'를 논했으며, ‘삼국지’를 정독한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조자룡을 그린 족자를 선물했다. 이런 화제들은 당장에는 무관할지 모르나 무심결에 쌍방 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고, 이런 이야기들이 전해지면서 양국 국민들은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된다.
현상적인 일화들에 살을 덧붙일 수는 있지만 이면의 본질은 하나다. 그것은 바로 현대화를 향해 온 문명고국 중국이 추구하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여정이 새로운 단계에 이르면서 중국 문학은 더 많은 사명과 꿈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의 ‘문학과 예술은 세계어’에 관한 서술은 200년 전 괴테가 밝힌 ‘세계 문학’에 관한 소회를 상기시킨다. 괴테는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 세계 문학이 형성되고 있다. 우리 독일인들은 그 가운데서 영예로운 역할을 할 것이다. 다른 민족들은 우리의 일을 주시하면서 우리를 칭찬 또는 비난, 수용 또는 배척, 모방 또는 왜곡을 할 것이고, 우리에게 마음을 열거나 거리를 둘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담담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인’을 ‘중국인’으로 치환한다면 이 말은 어쩌면 오늘의 중국 문학이 응당 가져야 할 자신감과 책임일지도 모른다.
원문 출처: <인민일보 해외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