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사진)
[신화사 베이징 8월 18일] 중국 항일전쟁 및 반파시즘전쟁 승리 70주년은 사실 일본 아베 신조 정부가 역사에 대한 인식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14일에 발표한 담화에서 아베 총리는 직접적인 사과를 회피한 데에 이어 15일에는 A급 전범들이 합장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함으로써 예전과 다를 것 없는 말과 행동을 보여주었다. 실로 역사의 직시, 심각한 반성, 진지한 사과가 없는 “3불(不)”주의의 재현이었다. 이에 대한 일본, 아시아, 유럽과 미국의 비난이 폭주했다.
일본 총리의 사죄가 중요한 이유
전패를 선언한지도 어언 70년이 흐른 지금, 그젯날의 “신생아”였던 일본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모습이 되었다. 일본의 젊은 세대중 많은 이들이 전쟁의 진상을 제대로 알지 못할뿐더러 전쟁의 성질 및 책임에 대해서는 더더욱 까막눈이다. 2차 세계대전 중 근 300만명의 일본인이 사망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중국땅에서만 근 3000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또한 1942년에 이른바 “검증(檢證)”을 이유로 발기한 행동 중, 적수공권의 싱가포르 청장년들이 일본군에 의해 근 6000명이나 사살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다. 한 역사학 교수는 일본 여행에서 발생한 일화중 “일본이 원자탄 폭격을 당했던 사실”과 “무조건 투항을 선포했던 사실”을 서술할 당시 학생들이 쥐죽은 듯 조용한 모습으로 아연실색을 금치 못하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국제적 학술계에서는 이미 상식으로 되어있는 내용에 대해 일본의 대다수 젊은이들이 까막눈인 실정이다.
그러니 일본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위안부”들의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된 사죄를 원할뿐이다”라는 절절한 호소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웃 피해국들에 대해 일본의 국가적 방향을 결정하는 현임 총리의 진심어린 사과가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한 나라가 인류의 양심적 인식과 반성에 기초하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덕적 용기가 없는 자에게 정치적 담당이란 과연 존재하겠는가? 과거를 직시할수 없는 자에게 미래란 과연 있겠는가?
총리의 사죄는 수치가 아니라 이웃나라의 존중과 신임이 부여되는 “필수코스”임과 동시에 아시아와의 융합을 이루고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죄의 역사를 감추려는 아베의 시도는 일본의 미래에 어두움만 가져다줄 것”이라 지적했다.
“중국과의 ‘대치’식 힘 겨루기”를 유발하는 착오적 역사관
2차 집권에 성공한 아베는 “중국위협론”을 대대적으로 선전함으로써 헌법 수정 및 군비 확충에 대한 국내의 민심 장애를 제거하려 시도함과 아울러 대외로는 미국과 서로 이용하고 미국-일본 동맹관계를 강화하면서 남중국해(南海)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들이 호소하는 이른바 “가치관 외교(價值觀外交)”와 “지구본 외교(地球儀外交)”는 국제 언론의 비웃음을 사는 “중국 뒤꽁무니 따르기”식 꼼수에 불과하다. 아베를 대표로 하는 일본 우익세력들에 대해 “일본의 강국 지위와 중국의 발전 굴기에서 ‘둘 중 하나만이 가능’한 극단적인 제로셈적 옵션으로 간주하면서 중국의 발전성과 및 굴기추세에 대해 적응 불가 심지어는 아예 적응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마인드를 보이는 것에 대해 점점 더 많은 지식인들이 우려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중국과의 ‘대치’식 힘 겨루기” 배후의 중요한 원인이라면 착오적인 역사관이 아베 정부에 엄중한 근시경을 부여해 중국을 포함한 신흥발전국가군체의 세계적 굴기라는 대세를 똑똑히 보아낼 수 없도록 시야를 흐리게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선진국은 지속적인 발전을 이뤄갈 것이지만 본국 문명에 입각한채 미래에로 나아가는 발전도상국의 발걸음은 절대 막을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는 점을 일본은 마땅히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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