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큐슈대학 의학역사관 [촬영/류슈링(劉秀玲)]
[신화망 베이징 11월 3일] (천리시(陳立希) 기자) 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일본 큐슈제국대학(현 큐슈대학) 의학부는 미군포로에게 치료 목적이 아닌 ‘실험수술’을 감행하여 8명이 목숨을 거뒀다. 당시 의과대학 학생이었고 후에 산부인과 의사로 근무한 히카시노 토시오 (東野利夫)도 그번 실험에 참여했다.‘큐슈대학 생체해부’ 사건을 입증할 수 있는 살아있는 마지막 증인으로서 본인은 이런 경력을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전쟁의 ‘비참함과 어리석음’을 후세에 남겨주기로 했다.
그 해, 미군 B-29 전투기 한 대가 일본 후쿠오까 상공에서 격추 당해 여러 명의 미군 비행기 조종사가 포로되었다. 당시 정확하게 몇 명이 포로되었는지는 이미 역사의 미스터리로 되었지만 그중 8명이 큐슈대학 의학부의 생체해부에 의해 죽은 것은 확실하다.
소위 실험과정에서 여러 명의 교수가 이들 미군 비행사 체내에 희석된 바다물을 주사하고 나서 그들의 폐엽과 기타 장기를 드러낸 다음 얼마동안 살 수 있는지를 관찰했다. 동시에 학생들에게 ‘주의사항’과 ‘요점’을 설명해 주었다. 이 8명의 비행사는 나중에 모두 숨을 거뒀다.
일부 미군 비행사 [신화망 베이징 6월 24일]에 참여한 교수의 추억에 따르면, 미군포로들은 흰 가운을 입은 교수들을 보자 자기들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의사로 착각하고 그 중 한 명은 심지어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다고 한다. 추호의 방어심도 없었던 그들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가 생체해부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차대전 후 연맹군은 도쿄, 요코하마, 마닐라 등 지역에 설치된 법정에서 전쟁범들을 심판했다. 1948년 3월 11일, 생체해부, 인체장기 불법제거, 미군포로 장기 식용 등 죄명에 연루된 30명의 일본인이 요코하마 법원에서 심판받았다.
큐슈대학은 생체해부 사건에 대해 여태껏 입을 다물었고 공개석상에서 이 화제는 금기였다. 일본 국내에 이를 반대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고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기를 비난하는 목소리에 대해 히카시노 토시오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사람을 치유하는 의사 입장에서 수술로 건강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고 전쟁 또한 평화를 실현하는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전쟁이 남겨준 것은 오로지 비참과 어리석음 뿐’이라고 말했다.
원문 출처: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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