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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군90주년) 첫 무선통신기 장비: 홍군 무선통신 역사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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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화망 | 2017-07-25 10:30:48  | 편집 :  주설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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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맨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왕정(王諍), 류인(劉寅)과 왕쯔강 (자료 사진)

[신화망 베이징 7월 25일]  (메이스슝(梅世雄), 양주룽(楊祖榮) 기자)  “인민해방군의 무선통신사업은 80여년 전에 시작됐다. 의지할 것이라곤 국민당 군대에서 빼앗은 무선통신기 몇 대와 포로뿐이었다.” 디칭화(翟清華) 군사과학원 연구원은 이같이 말했다.

홍군의 무선통신은 전쟁 규모가 확대되면서 차츰 발전했다.

당시 홍3군 8사(帥) 22단(團) 2연(連) 군인이었던 리옌푸(李衍福)는 “우리는 마오주석의 지휘하에 최초로 반 ‘토벌전’에서 승리했다”고 말했다.

1930년12월 말, 홍1방면군은 외톨로 무모하게 달려드는 국민당군 제18사단을 섬멸했다. 살상했거나 생포한 적은 사단장 장후이짠(張輝瓚) 이하 9천여 명이었다.

“이 전투에서 우리 홍3군은 18기의 무선통신기를 빼앗았다.” 신중국 설립 후 난징 경비구역 부사령원을 지낸 리옌푸는 기억을 더듬어 말했다.

디칭화 연구원은 이때 빼앗은 무선통신기는 15와트의 출력에 불과해 수신만 할 수 있을 뿐 전보를 칠 수는 없었다고 소개했다.

홍군은 수신만 가능한 ‘반’ 무선통신기를 테스트했다. 왕정(王諍)은 기계를 점검해 수리하고, 류인(劉寅)은 전선을 가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테스트를 마친 무선통신기는 국민당 중앙사의 뉴스를 수신했다.

“복구되어 사용된 후 적을 정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왕정의 훗날 기억에 따르면 당시 국민당 부대는 가는 곳마다 무선통신기 연락을 시작할 때 먼저 상대방에게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 위치를 확인했다. 아울러 당시 ‘토벌군’ 부대는 비교적 혼란한 상태였으므로 암호가 통일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 간의 연락은 암호를 쓰지 않은 보통어(Plain Language)를 사용했다. 이는 홍군에게 부대의 행동과 배치를 보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무선통신기도 잇달아 들어왔다. 며칠 후 국민당군의 다른 부대 탄다오위안(譚道源) 사단을 포위해 섬멸할 때 홍군은 무선 전기통신기 한 대를 빼앗았다.

디칭화 연구원은 이 때에는 무선통신기가 흠 없이 보존돼 무선 기술자 6명이 함께 홍군 본부로 이송됐다고 소개했다.

이로써 홍군은 1대 반의 무선통신기와 기술자들을 보유하게 되었다.

1931년2월, 홍군이 앞서 빼앗은 무선통신기를 기반으로 왕정 등의 도움을 받아 홍군 제1기 무선전 훈련반을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하이 당중앙이 양성한 무선전기술요원들이 장시(江西) 중앙 소비에트 지역에 옴으로서 소비에트 지역 무선전기술력이 한층 더 강화되었다.

제2차 중 홍군 반 ‘토벌전’에서 홍군은 100와트 출력을 내는 무선통신기 한 대를 빼앗았다. 3차 반 ‘토벌전’을 마친 후 중앙 홍군의 무선통신기는 이미 10대로 늘어났다. 1931년12월 닝두(寧都)에서 봉기한 부대는 홍군에게 한꺼번에 8대의 무선통신기와 40여 명의 기술자들을 안겨주었고, 이로 인해 홍군의 무선통신사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실현하게 되었다.

1대 반의 무선통신기로 시작한 인민해방군 통신 사업은 현재 여러 종류의 전문부(분)대로 구성된 전문기술 병과로 발전해 작전, 훈련, 과학연구, 재난 구조 및 국가 건설 지원 과정에서 여러 가지의 통신보장임무를 완성했다.

원문 출처: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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