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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 발견, ‘난징대학살’ 항전시기 이미 국내외 공인된 전쟁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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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신화망 | 2017-12-12 10:56:13  | 편집 :  리상화

[신화망 난징 12월 12일] (장팡(蔣芳) 기자) 올해는 난징대학살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최근에 발견된 사료에서 ‘난징대학살’이라는 말이 항전시기에 이미 여러 번 복수의 보도 채널에서 홀로코스트(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와 동등하게 간주돼 등장한 고정된 표현법이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난징대학살 사건이 전후 조작된 것이라는 일본 우익의 주장을 일축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그 동안 학계에서는 ‘난징대학살’이라는 단어가 공개 출판물에 최초로 등장한 것이 1938년 4월 5일자 ‘세계전망’지에서 였다고 인정해 왔다. ‘세계전망’지는 난징대학살을 목격한 미국인 선교사 조지 애쉬모어 피치(George Ashmore Fitch)가 1938년 3월 1일 광저우에서 발표한 ‘난징에서의 일본병’이라는 제하의 연설 내용이 담긴 연설문을 게재해 난징에서 일본군의 학살 만행을 폭로했다. 번역자 왕쓰멍(汪思夢)은 연설 내용에 따라 제목을 ‘난징대학살 목격기’로 정했다.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각종 항전시기 역사 문헌에서 ‘난징대학살’이라는 표현이 가장 먼저 사용된 것이었다.

후줘란(胡卓然) 난징대학살사 및 국제평화연구소 부연구원은 최근 연구에서 외국 여론은 이 사실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1943년 5월 18일 ‘중앙일보’는 ‘녹스 추축국에 경고: 미국, 난징대학살 잊지 말아야 한다’ 제하의 보도를 게재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보도가 당시 미국 UP통신사가 1943년 5월 16일 보스턴에서 내보낸 뉴스 전보를 중국 ‘중앙통신사’가 전재했다는 점이다. 신문은 당시 미국 해군장관이었던 프랭크 녹스가 일본∙독일∙이탈리아 등 추축국(Axis Powers)에 보낸 경고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절대로 난징대학살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는 유태인이 학살당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가증스런 행동을 한 사람들은 모두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이런 피비린내 나는 일을 한 괴수는 엄벌을 받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로 보아 미국정부의 중요 관료가 1943년에 난징에서 일어난 대학살에 대해 국제 반파시즘 진영의 공동 분개를 표출했고, 난징대학살과 홀로코스트를 같이 언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프랭크 녹스는 해군 장관을 맡기 전 ‘시카고 데일리 뉴스(Chicago Daily News)’지의 발행인이었고, ‘시카고 데일리 뉴스’지는 1937년 12월 15일, 즉 난징대학살이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난징에 주재하던 신문사 기자가 쓴 난징대학살 뉴스원고를 실었는데 이것이 일본군의 폭행을 세계에 알린 첫 공개보도였다고 후줘란 연구원은 설명했다.

전문가는 이들 사료는 난징대학살이 일어난 후 곧장 중국과 외국이 공인한 일본 침략자들의 잔혹한 폭행 사건이 되었고, 왜적들이 난징에서 저지른 죄행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입증한다고 말했다.

원문 출처: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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