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사 프랑스 노르망디항 위어 8월 14일] “한 나라는 용서를 구해야만이/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 만일 그가 아직 남아있는 동정심을 보여주며/ 지난날의 실성에/ 짊어져야 할 책임을 짊어진다면/ 언젠가/ 봄날이/ 이 두 거인과 흡사한 이웃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 문장의 출처는 프랑스 시인이며 작곡가인 쟝 구종이 일본군의 난징(南京) 대학살 죄행을 폭로하기 위해 창작한 시가 《난징의 눈물(南京之淚)》이다.
한번도 중국에 와본 적이 없는 프랑스 시인, 작곡가가 왜 70여년 전의 난징에 관한 비참한 스토리를 써냈을까?
구종은 노르망디 사람이며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공부했고 젊은 시절 파리의 콘서트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세계 각지를 유람하기도 했다.
1998년 부터 구종은 2차 대전과 관련된 90여수의 시가를 창작했고 작곡까지 직접 해 그 팀이 노르망디에서 공연하면서 거대한 성공을 거뒀다. 시라크,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과 영국 여왕 등이 모두 그의 사업에 찬사와 지지를 보냈고 각 종 콘서트를 통해 현시와 유럽의 근 7만명이 그의 특별한 프랑스 음유 형태의 공연을 경청하게 했다.
그러나 창작 과정에 그는 대부분 서방사람들이 한구간의 2차 대전 역사를 잊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이 바로 동방 전장이였다.
“2차 대전을 말하면 서방사람들은 보통 1939년부터 1945년까지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일본이 중국에 대한 침략은 1937년(심지어 더 일찍)부터 시작됐다. 2차 대전이 인류에게 조성한 상해는 세계적인 것이며 2차 대전에서 중국의 살상자수는 너무 많았다. 이를 위해 나는 중국과 관련된 시가를 써내기로 결심했다,”구종의 말이다.
구종은 창작과정에 대량의 역사 자료를 조회하고 방문취재도 했다. 그는 “독일과 달리 일본은 전후 전쟁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아주 큰 모호한 공간이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독일에서 나치들을 위한 초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일본에서는 침략성징에 대한 인식조차 모호했으며 진정한 사과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는 중일 두 동방 대국의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국은 2차 대전 시작부터 막대한 대가를 치뤘고 전체 전쟁 과정에 일본의 대부분 병력을 흡인했으며 그 시기 세계 질서의 회복을 위해 큰 기여를 한 나라다.” 구종은 이같이 말하면서 《난징의 눈물》에 이어 《플라잉 타이거스의 노래》와 “위안부”를 테마로 한 시가를 창작했으며 눈길을 중국과 아시아에 돌렸다고 밝혔다. [글/신화사 기자 왕차오원(王朝文), 잉창(英強), 번역/신화망 한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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