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사진)
[신화사 베이징 9월 3일]《인민일보(人民日報)》의 보도에 따르면 올해 9월 3일은 중국인민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일이며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일이다. 이 특별한 날에 역사를 되돌아보며 난징(南京)대학살, 731 세균전, “3광”정책 등 일련의 참혹한 폭행들은 사람들을 비분강개하게 하고 핑싱관(平型關) 대첩, 백퇀대전(百團大戰), 타이얼좡(台兒莊) 대첩, 런안창(仁安羌) 대첩 등 하나하나의 전투 장면들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줬으며 양징위(楊靖宇), 줘취안(左權), 퉁린거(佟麟閣), 장즈중(張自忠) 등 하나하나의 영웅 이미지는 사람들의 경양을 받았다. 중국항전이 치룬 거대한 희생, 이루어낸 위대한 승리는 영원이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이 특별한 날에 역사를 사색해본다. 만일 14년간 지속된 중국의 항전을 세계 반파시즘 전쟁의 대배경 아래에 놓고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중국 항전의 시작은 세계 반파시즘 전쟁의 시작이었고 중국 항전의 끝 역시 세계 반파시즘 전쟁의 끝이었다. 중국은 세계 반파시즘 전쟁에서 가장 빨리 시작되고 지속 시간이 가장 긴 나라이다.
시작:중국 항전은 세계 반파시즘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세계 반파시즘 전쟁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오랫동안 “서방 중심론”의 영향으로 인해 해외 학자들 대부분이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주장하고 있다. 최근 몇년간 역사 연구의 깊이있는 추진과 더불어 점점 더 많은 해외 학자들이 세계 반파시즘 전쟁의 시작은 중국에 있다 인정하고 있다. 우리는 9.18 항전을 시작점으로 하는 것은 역사 사실에 부합된다고 주장하며 이는 일본이 발동한 침략전쟁의 파시즘 성질을 기반으로 얻어낸 결론이 동시에 그때 당시 무장으로 파시즘 침략에 반항한 중국 군민의 영웅의 장거를 기반으로 얻어낸 결론이다. 끝:중국의 항전은 왜 세계 반파시즘 전쟁 최후의 순간까지 견지했을까?
세계 반파시즘 전재의 끝은 최후의 파시즘 국가—일본의 전패 투항을 상징으로 한다. 동시에 이는 중국 항전의 끝이기도 하며 중국 항전 승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 끝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문제를 깊이있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가장 빨리 시작된 중국 항전이 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됐고, 또 어떻게 최후의 승리까지 견지할 수 있었을까? 중국의 항전이 14년간 지속된 가장 주요한 원인은 적아 국력과 군사력 차이가 현저한 상황에 동맹국에서 “선 유럽 후 아시아”의 전략을 실시했기 때문이 이로 인해 중국이 항전 승리를 쟁취하는 시간이 마지막까지 지연됐다.
가장 빨리 전투에 투입했다는 것은 가장 먼저 희생을 치뤘음을 의미하며 가장 마지막까지 전투했다는 것은 희생이 마지막까지 지속됐음을 의미한다. 이탈리아, 독일 파시즘이 선후로 멸망할 즈음에도 일본 파시즘은 여전히 궁지에 몰린채 최후의 발악을 했다; 타국 인민들이 평화의 햇빛과 이슬을 맞이할 즈음 중국 인민은 여전히 전장에서 목숨걸고 고전했다; 타국에서 전쟁의 폐허 위에 삶의 터전을 재건할 당시 중국 대지는 여전히 전쟁의 피바람에 휩쓸려야만 했다. 묻고싶다. 어느 누가 중국처럼 이렇게 파시즘의 미친 듯한 공격에 버텨냈고 그것도 14년간이나 버텨냈는지 말이다. 어느 누가 중국처럼 이렇게 수많은 일본 침략군을 견제했고 수백만명을 붙잡아뒀는지 말이다. 중국 근대 이래 최대 규모, 최장 시간, 가장 넓은 범위에서 가장 흉포한 적과 대적한 반침략 전쟁에서 중국인민은 철같은 의지, 피와 살로 최후의 순간까지 견지해 세계 반파시즘 전쟁을 최종 승리에로 밀고 나아갔다.(글/리우치엔안(柳千岸), 번역/신화망 한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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