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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서역(西站), 왕지엔화(王建華) 천안문 호위대 정치위원과 배웅요원들이 퇴역 노병들을 향해 군례로 고별하고 있다.[촬영/신화사 기자 뉴어우청호(牛成浩)]
[신화사 베이징 12월 4일] 12월1일은 무장경찰 천안문 경호부대 국기호위대 호기수(護旗手) 웨이카이(魏凱)가 퇴역하는 날이다. 5년의 군대생활, 국기수호를 위해 숨쉬었던 1825일… 웨이카이가 국기를 따라 천안문 광장을 걸어간 것은 1500번에 이른다. “군대 신병이었던 시절, 새벽 3시까지 훈련해야 했던 날도 있었습니다. 총쏘기를 연마하고저 팔꿈치에 돌을 끼고 800미터의 경주로를 17번씩 뛰기도 했었죠.” 입대하던 첫날, 국기게양식에 참가하던 첫날, 호기수로 섰던 첫날, 양회와 “9.3” 열병식에 참가했던 날… 군대생활에 새겨진 하나 또 하나의 사건들은 아직까지도 그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그러나 입대한지 5년이 된 어느날, 여가시간을 이용해 천안문에서 일반시민들과 나란히 한채 국기게양식을 보던 그때에야 웨이카이는 “광장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12월1일 새벽, 웨이카이와 퇴역전우들은 가슴에 붉은 꽃을 단채 게양식 대열이 금수교(金水橋)를 지나 장안거리(長安街)를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게양식 대열과 마주한 그들은 모표(帽徽)와 금장(領花)이 없는 군례를 드리고 있다.[번역/ 신화망 한국어판]
[촬영/신화사 기자 리스민(栗世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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