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사진)
[신화사 베이징 12월 4일] 뉴욕 허드슨강 입구에 위치한 자유여신상은 해외를 넘어 미국땅을 내딛는 수많은 이민자들을 맞이한 존재로 미국의 상징물로 간주된다. 현재 미국 국내에서는 중동지구의 더 많은 난민들을 수용할 것인지의 여부에 관해 논란이 뜨거운 실정이다. 그런 시점에서 “자유여신상의 원형은 아랍여인이었다”는 연구진의 발표가 있었다.
미국 국가공원관리국의 소개에 의하면 자유여신상의 설계자이자 프랑스 유명 조각가인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티(Frederic Auguste Bartholdi)는 이집트 방문에 한창이던 1855년~1856년사이, 대형 공공기념비와 거형조각을 창작하고싶은 열정을 느꼈다고 한다. 1869년, 이집트정부는 수에즈운하 등대를 건축할 데 관한 소재를 공개모집했고 바르톨티는 그 기회에 이집트 부녀가 긴 치마를 입은채 횃불을 높이 치켜든 거형조각을 제작한뒤 “아시아에 광명을 주는 이집트(혹은 진보)”라고 이름지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연구소 홈페이지는 파리 모레노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바르톨티가 이와같은 조각식 등대를 설계할때 “면사포를 쓴 농촌부녀”를 원형으로 한 것이라 전했다.
그외, 자유여신상을 연구해온 에드워드 베런슨은 “바르톨티의 스케치는 여러번에 거쳐 완성되었다. 그렇게 조각상은 ‘아랍 농촌부녀’로부터 ‘여신’으로 변해갔다. 26미터의 높이를 자랑하며 받침대는 근 15미터에 달한다. 그러나 이집트측은 그의 설계를 크게 선호하지 않은채 포트사이드항에 55미터에 달하는 등대를 세워버렸다. 이에 바르톨티는 주저앉지 않았고 방향을 틀어 1870년에 기존의 방안과 이념을 기초로 자유여신상을 설계하기 시작했으며 ‘자유는 세계에 계발을 준다’는 뜻을 부여했다. 1886년, 독립 100주년을 맞이한 미국에 프랑스정부가 선물을 보내면서 자유여신상은 뉴욕 리버티섬에 착지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프랑스통신사는 “자유여신상의 원형이 아랍부녀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시리아 등 중동국가에서 몰려드는 난민에 대해 미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지 궁금하다”고 보도했다. [번역/신화망 한국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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