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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으로 발전을 이끌어) "세계 에너지 연결 비전"의 "쉬지(許繼) 패스워드" 해독

출처 :  신화망 | 2016-05-14 13:47:11  | 편집 :  박금화

(자료 사진)

    [신화사 정저우(鄭州) 5월 13일] (리펑(李鵬) 기자) 당신은 국경선과 대륙을 뛰어 넘은 올올이 송전선들로 세계 및 대륙간 배전망을 서로 연결하여 "글로벌 에너지 인터넷"을 형성해가는 방대한 정경을 상상할 수 있는가?

    송전거리의 제한으로 과거에는 불가능해 보엿던 꿈이 현재 한걸음씩 현실로 되어가고 있다. 중국 초고압 송전 기술의 현대화한 기업들이 신속하게 굴기하면서 이같은 기초가 마련되었다. 국가배전망회사 소속 허난(河南) 쉬창(許昌)시 쉬지그룹(許繼集團)이 그 대표적 기업 중의 하나이다.

    "초고압"의 정상에 오르다

    초고압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송전기술로 원거리, 대용량, 저소모, 소부지 등 종합적인 우세를 갖고 있다. 시린궈러맹(錫林郭勒盟)에서 타이저우(泰州)에 이르는 ±800kV 초고압 직류 송전 프로젝트가 얼마전 핵심설비 입찰 공고를 진행하였는데, 쉬지그룹의 "초고압 변환개폐기" 전체 방안이 세계적인 유명기업을 망라하여 두 경쟁사를 누르고 이 프로젝트를 따냈다.

    간고한 반등의 길

    "초고압"의 정상에 오르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쉬지그룹의 전신인 쉬창계전기(許昌繼電器)공장은 20세기 70년대 헤이룽장(黑龍江)에서 허난 쉬창으로 이주해온 국유기업으로, 이는  직류 초고압 송전 기술을 연구 및 개발하는 중국의 중요한 기업들 중 하나이다.

    제어 및 보호설비는 초고압 송전 시스템의 "대뇌"이고 "경위"이자, 국제 거두가 초고압 송전 기술을 봉쇄하는 "명문(命門)"으로도 여겨져왔다. "1997년까지 우리 회사의 연구·개발원은 5명에 불과했다." 쉬지그룹 직류송전시스템회사 현임 사장 장아이링(張愛玲)은 이같이 말했다.

    1998년, 쉬지그룹에서 연구개발한 DPS100 통제 및 보호시스템은 중국의 배전망에서 처음으로 응용되었다. 그러나 해외 보다 수십년간 뒤처진 이유로 이 시스템은 더 높은 전압 등급의 배전망을 건설하려는 중국의 수요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해외 기술의 도입은 지름길로 보이긴 했으나 국제 거두들은 세대 교체가 필요한 기술 혹은 생산 도면(圖紙)만을 양도한 채 소스 등 핵심적 기술은 여전히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리하여 쉬지인의 자주적 연구개발의 길은 확고해졌다. 쉬지그룹의 DPS2000 직류 통제 및 보호 시스템이 단 3년만에 탄생되면서 해외 동류 설비 가격은 "절반"으로 떨어 졌다.  2008년 DPS3000 시스템이 발표되면서 중국 초고압 직류 송전의 통제보호설비는 세계 선진 수준으로 단숨에 올라섰다.

    초고압 송전의 관건적 설비에는 통제 및 보호설비 이외에도 초고압 직류 전환에 사용되는 변환개폐기가 있다. 2005년, 중국의 첫 초고압 국산화 프로젝트이며 화중(華中), 서북 2대 골간 배전망을 연결하는 링바오(靈寶)Back-to-back 초고압 직류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그해 9월에는 쉬지그룹의 유성송전시스템회사(柔性輸電系統公司)가 성립되면서 초고압 변환개폐기의  연구와 제작을 개시했다.

    "그 때만 해도 변환개폐기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밸브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판차이윈(範彩雲) 유성송전시스템회사 현임 총 공정사는 이는 자신도 "본적이 없던 일"이었다며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교과서적 기본 원리로부터 학습한 이 팀이 밤낮없이 독서하고 실험한 끝에 1년 후 해외 설비 가격의 10분의 1에 불과한 중국의 첫 초고압 변환개폐기가 성공리에 제작되었다. 

    인재의 "큰 그물"로 "세계 에너지 연결 비전"을 들어 올려

    2006년, 귀국 인재 8명이 쉬지에 동시 가입했던 것은 오늘까지도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쉬지그룹 연구개발센터 주임 저우펑쵄(周逢權)은 당시 캐나다 에너지회사 연구원이었다. 그룹은 그를 합류시키고저 캐나다로 방문차 직접 사람을 파견했다. 저우펑쵄이 합류에 동의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는 소식에 그룹 이사장사장은 생화를 들고 공항에서 영접했다.

    이는 쉬지그룹이 갈증에 목마른듯 인재를 유치해들인 사례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일본유학생 하이타오(海濤)와 쉬지그룹의 인연은 2000년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맺어졌다. 인재를 잡기 위해 오는 내내 설득한 끝에 하이타오는 비행기에서 내리자 바람으로 쉬창으로 보내졌다. 하이타오가 "주하이(珠海)에서 발전하길 더 희망한다"며 완곡히 거절하자 쉬지그룹은 즉시 박자를 맞춰 주하이쉬지그룹을 성립하고 하이타오를 총경리로 부임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주하이쉬지그룹은 전 중국 최고의 배전망 업무를 자랑하는바 매년 그룹에 20여 억위안의 생산액을 기여한다.

    통계에 의하면 현재 만명 직원을 보유한 쉬지그룹은 대대적 연구개발의 플랫폼에 의지하고 400여명의 고급인재를 핵심으로 내세워 3000명의 연구개발 대오를 구축한 상황이다. 2010년, 기업이 최대 과학연구 공략전을 가동하여 연구개발원 1500명을 집중시켜 70일간 분투한 끝에 300여 가지의 기술적 난관을 돌파했다. 

원문 출처: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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