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망 리우데자네이루 10월 14일] (천웨이화(陳威華), 자오옌(趙焱) 기자) 리우네자네이루에 있는 다닐로 산토스 씨의 집은 작은 중국 박물관이라고 부를 만 하다. “이건 쉬베이훙의 작품인데 1960년대에 중국에서 산 것입니다. 역사가 느껴지는 이 병풍은 1980년대 내가 찾아낸 것입니다.” 84세의 브라질 노인은 자신이 소장한 중국 예술품의 내력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
“처음 중국에 간 것은 1966년이었습니다. 천이(陳毅) 원수가 인민대회당에서 우리와 4시간 10분 회담을 했습니다. 저우언라이 총리를 직접 보기도 했는데 그의 풍채는 사람을 압도했습니다. 중국에 몇 번 갔는지 자세한 횟수는 잊어버렸지만 거의 매년 갔습니다. 어떤 때는 일년에 여러 번 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중국에 갔을 때의 광경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고 그는 신화사 기자에게 말했다.
산토스와 중국의 인연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냉전의 영향으로 브라질 군정부는 브라질에서 근무하던 9명의 무고한 중국인을 체포해 중국과 외국을 놀라움에 빠뜨린 브라질 ‘중국 9인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브라질의 유명한 변호사였던 핀토 변호사가 중국 정부의 위임을 받아 9명을 변호했다. 30살이던 산토스는 그의 조수와 중요한 증인을 맡아 구조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 그때부터 산토스는 브라질과 중국의 친선발전을 촉진시키는 사절이 되었다.
50년 넘게 산토스와 그가 세운 브라질-중국 친선협회는 멀리 떨어진 중국에서 발생하는 괄목상대할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중국의 빠른 발전은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합니다. 가히 기적이라 할 만합니다. 신중국 창건에서 개혁개방된 오늘까지 수억의 중국인이 빈곤에서 벗어나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수 세대를 거쳐 중국은 많은 개도국 국민들의 이익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습니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중국 발전의 증인입니다. 요즘 내가 중국 청년들과 수십 년 전 중국에 갔을 때의 광경을 이야기하면 그들은 모두 놀라면서 예전의 중국 사회가 정말 그랬었는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중화민족은 인류사회 발전의 힘든 시험에서 세계가 감탄하는 답안지를 내놓았습니다. 중국은 불과 수십 년 만에 오랜 기간 누적된 가난과 쇠약함, 쇄국정책을 실시하던 가난한 나라에서 개방적이고 평화를 사랑하고 세계의 발전을 추진하는 동방의 대국으로 변했습니다”고 말했다.
그의 최대의 소망은 브라질과 중국이 계속해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브라질과 중국은 두 개의 중요한 개도국입니다. 양국의 대화와 교류는 근래 들어 계속 심화되고 있습니다. 신흥 경제국 협의체인 브릭스(BRICS)는 양국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양국은 협력 잠재력이 크고 중국이 제안한 ‘일대일로’ 건설 구상은 브라질이 적극 참여할 가치가 있습니다”고 그는 지적했다.
원문 출처: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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