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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고사성어: 병귀신속(兵貴神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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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중국국제방송국 | 2016-10-21 16:17:39  | 편집 :  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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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자풀이: 군사 병(兵), 귀할 귀(貴), 귀신 신(神), 빠를 속(速)

   뜻풀이: (네이버사전)군사는 신속성이 첫째다. 군대는 신속성을 가장 귀중하게 생각한다. (중한사전)군사를 지휘함에는 신속을 위주로 해야 한다.

   출처: "손자•구지(孫子•九地",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유래: 동한(東漢) 말년에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당시 대군벌이었던 원소(袁紹)는 기주(冀州)와 청주(靑州), 유주(幽州), 병주(幷州)(현재의 산동, 하북, 산서 등 지역) 등 네개 주를 점령하고 북방에서 군사실력이 제일 강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원소의 세력범위 이북의 요동(遼東)과 요서(遼西)와 북평(北平)(현재의 하북 동북부 지역) 세 군에는 소수민족 부락연맹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요서 탑돈선우(榻頓單于)의 세력이 제일 막강했다. 점거지역이 외래침입을 받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원소는 이들과 화친의 방법을 써서 군사대결을 피했다.

   기원 200년에 원소와 다른 한 군벌인 조조(曹操)가 관도(官渡)에서 맞붙게 되었다. 그 결과 원소는 전술적으로 허점을 보이면서 대패했다. 이 결과로 하여 천하통일의 꿈을 가지고 있던 원소는 병들어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원소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아들인 원상(袁尙)이 기회를 틈 타 스스로를 기주목(冀州牧)으로 봉했다. 맏아들인 원담(袁譚)과 다른 한 아들인 원상은 서로 모순이 있었고 형제간에 화목하지 못했다. 조조는 이 기회에 대군을 파견해 원담과 원상을 소멸하고 북방을 일거에 통일하려 계획했다. 강력한 적수를 앞에 둔 원씨 형제는 즉시 연합해 조조군에 저항했고 이를 본 조조는 군대를 철수시켰다. 조조군이 물러가자 형제는 또다시 반목하고 서로 음해하기에 바빴다.

   후에 원담이 안평(安平)과 발해(渤海), 하간(河間) 등 군(郡)을 탈취하니 원상은 본거지를 잃게 되고 할수 없이 다른 동생인 원희(袁熙)를 찾아갔다. 이를 틈타 조조군은 원담을 공격했다. 용감한 조조군은 재빨리 발해군(渤海郡) 성남쪽을 공략했고 원담도 혼전중에 조조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마침 이떄 원희의 부장인 초촉(焦觸), 장남(張南)이 원씨형제를 배반하고 성을 조조에게 내주었다. 이에 원희와 원상은 북방의 탑돈선우에게 찾아가 보호를 요구했다.

   탑돈선우는 의리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 원소가 베푼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고 원씨형제가 잃은 땅을 수복하도록 도와주리라 결심했다. 탑돈선우의 군사는 늘 북방지역을 침입했고 이는 조조의 큰 골칫덩어리로 되었다. 기원 207년에 조조는 친히 대군을 통솔해 북방의 변경지역을 평정하려 계획했다.

   전쟁의 시작단계에 조조군은 병졸과 군수품이 너무 많아 한달동안 행군해서야 겨우 하간군(河澗郡)의 역성(易城)에 도착했다. 이런 상황을 통찰한 책사 곽가(郭嘉)가 조조에게 간언했다. "군사를 사용함에 있어서 신속함이 생명입니다. 그래야 적들이 우리의 의중을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천리나 떨어진 먼곳에 가서 싸워야 하지만 행군속도는 굼뜹니다. 현재의 방법은 대량의 군수품은 버리고 경기병을 파견해 밤에 낮을 이어 달려가 적의 본거지에 깊숙히 침투함으로써 적들이 알아차리기전에 진공을 발동해야만 일거에 승리할수 있습니다."

   조조는 즉시 곽가의 계책을 받아들여 직접 간단한 차림을 한 수천의 정예군사를 이끌어 북진하였다. 이들은 산과 강을 넘고 밤에 낮을 이어 행군한 끝에 탄둔선우가 있는 유성(柳城 현재의 요녕 조양시 서남)을 눈앞에 두었다. 유성과 백리 상거한 백랑산(白狼山)에서 조조가 이끈 수천의 기병은 탑돈선우의 수만명 철기군과 조우하게 되었다. 숫적으로 큰 열세에 처했으나 조조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높은 곳에 올라가 적정을 살폈는데 창졸히 전투에 응한 적군의 진세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는 선봉장 장료(張遼)에게 군사를 이끌고 공격하라고 명했다. 조조군은 일 당 백의 용맹을 발휘했고 적군은 크게 패했으며 탑돈선우도 전투중에 죽고 말았다.

   원희,원상은 도망쳐 요동태수 공손강(公孫康)을 찾아갔다. 전쟁에서 승리한 조조는 군사를 거두어 남쪽으로 돌아갔다. 누군가 조조에게 왜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계속 북방지역을 공격하지 않았는가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들은 자기들끼지 살육할 것입니다." 과연 얼마후 원희와 원상은 공손강에서 살해당했다.

   이 사자성어는 "삼국지•위서•곽가전"에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손자 •구지"에도 그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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