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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회귀 20주년) 너의 노력 내가 안다…더욱 빛나기 바란다—마카오 주민이 보는 홍콩 20년

출처 :  신화망 | 2017-06-26 16:58:55  | 편집 :  주설송

[신화망 마카오 6월 26일]  (류창(劉暢) 기자)  홍콩과 마카오는 중국이란 큰 패밀리에서 많은 풍파를 겪은 후, 더욱 운치가 돋보이는 자매다. 1997년과 1999년, 홍콩과 마카오가 잇따라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순조로운 회귀에서 번영과 안정을 계속 유지 나아가서는 중국의 발전에서 새로운 역할, 새로운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르기까지, 서로 손잡고 걸어 온 홍콩과 마카오는 서로의 노력, 기쁨과 수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홍콩 회귀 20주년에 즈음해, 3명의 일반 마카오인은 그들 안중의 홍콩 20년을 들려 주었다. 전혀 다른 3개의 스토리였지만 모두 경험은 배우고, 성과는 축하하고, 국가발전에 함께 참여하겠다는 아주 상사한 키 워드가 내포되었다.

“하나의 작은 평안의 종에 홍콩 사회봉사의 섬세함, 고효율과 따스함이 깃들어 있다”

1998년, 홍콩 회귀 1년이 되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한 나라 두가지 제도)’, ‘홍콩 사람이 홍콩을 관리(港人治港)’ 및 고도의 자치 분위기에서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처녀 우샤오리(吳小麗)는 흥분과 긍지를 느꼈다.

“홍콩의 사회봉사는 이미 1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어요. 홍콩 회귀 후, 특별행정구 정부와 사회 각 분야에서는 홍콩의 사회봉사가 정밀화, 전문화, 휴머니즘 방향으로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돌렸고 마카오 공공사업의 발전에 많은 계시를 주었다”고 우샤오리는 말했다.

우샤오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9년 마카오 회귀 후, 현지 단체들은 ‘연합해서 포르투갈의 마카오정부에 권리와 이익을 요구’하던 데서 주민들에게 실속있는 생활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이렇게 하게 된 본보기가 바로 홍콩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홍콩의 사회봉사 인사들은 마카오의 각 사회봉사 분야에서 고문을 담당 혹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우샤오리는 오늘날 사회는 홍콩, 마카오와 주장(珠江)삼각주 나아가서는 더욱 많은 내지 도시들이 이미 비슷한 발전단계에 와 있는 상황이고 그렇기 때문에 직면한 사회문제도 비슷하며 이는 사회봉사기구의 손에 손을 잡은 도움이 필요하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은 ‘문화의 사막지대’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홍콩의 문화발전을 진정하게 들여다 보지 않고 하는 소리다”

20여년 전, 무신신(穆欣欣)이라고 부르는 한 마카오 여자 아이가 자주 배 타고 홍콩으로 건너 와 연극과 문예공연을 관람했다. 지금 이미 유명한 극작가로 된 그는 한편으로는 대본을 쓰면서 전통 희곡의 ‘현대적인 표현’에 종사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 창작을 격려하는 마카오 문화산업재단 행정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긴 세월동안 저는 홍콩으로부터 예술의 영양분은 섭취했어요. 예전부터 저는 홍콩을 ‘문화의 사막’이라고 하는 논조에 도저히 동조할 수 없었어요. 그건 사람들이 홍콩 이 도시의 문화발전을 진정하게 들여다 보지 않고 하는 소리에요”라고 무신신은 말했다.

무신신이 처음으로 홍콩의 희곡을 접한 것은 베이징(北京)에서였다. 1996년, 제1회 중국어희곡패스티벌에서 홍콩연극단이 중국 표준어로 공연한 번역작품 ‘작은 신의 아이들’이 예술성과 전문성 면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다. 무신신은 “그때부터 저는 홍콩의 연극단이 중국 표준어로 내지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무신신은 홍콩 회귀 후, 홍콩인의 문화 동질감은 계속 강화되었고 나아가 문화의 자각(自覺)과 자신을 불러왔다고 평가했다.

“홍콩, 마카오와 광저우(廣州)가 함께 2018년 중국국제수입박람회를 추진하는 것이 저의 소원이에요”

1989년, 대학을 졸업한 허하이밍(何海明)은 선전(深圳)에 남아 당시 중국인에게 아주 생소한 컨벤션 업계에 몸을 담았다. “처음 시작할 때 인근의 홍콩으로부터 많은 경험을 배웠어요. 당시 저는 언제 되면 내지에도 전문적이고 국제적이고 시장화된 전시·컨벤션 전공이 있게 될가고 생각했어요”.

지금 이미 마카오 세계국제회의전문협회(ICCA) 이사장이 된 허하이밍은 “홍콩은 1997년에 아시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주식과 부동산이 폭락했지만 컨벤션을 대표로 한 서비스업은 꿋꿋했어요. 그것은 회귀 후, 홍콩과 내지의 경제협력이 컨벤션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

마카오 세계국제회의전문협회와 홍콩 전시컨벤션업계협회(HKECIA)의 공동 관찰과 예측에 의하면, 1997년 전, 홍콩의 컨벤션 업무 중 내지 관중은 약 5% 밖에 되지 않았지만 회귀 후, 이 수치는 매년 늘어나고 있고 지금은 안정적인 30%를 유지하고 있다.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홍콩이 제공할 수 있는 총 전시 면적은 이미 15만㎡가 넘는다. 홍콩무역발전국은 매년 홍콩에서 30여차의 국제무역전시회를 주관하고 있고 그중 11개 전시회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구매 플랫폼이며 전자, 보석, 선물, 시계 및 일루미네이션 등 무역 플랫폼은 세계에서도 가장 크다.

지금 허하이밍 이사장에게 하나의 ‘도전’해볼 만한 꿈이 있다. “홍콩, 마카오와 광저우가 컨벤션 업계에서의 우세를 발휘하여 3개 도시가 함께 2018년 중국국제수입박람회를 주관하는 것이 저의 소원이에요”라고 허 이사장은 말했다. 

원문 출처: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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