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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특집) 시진핑: 신시대의 길잡이

출처: 신화망 | 2017-11-17 06:30:32 | 편집: 박금화

2. 위대한 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당의 핵심  

 5년 전 중공중앙 총서기로 부임 시, 시진핑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정치임무는 전 당이 당중앙에 복종하는 것을 확보하고 중공중앙의 권위와 집중된 통일 영도를 견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려면 정신이 산만하고, 능력이 부족하고, 군중과 동떨어지고, 소극적이면서 부패하는 등 당 내 첨예하고 심각한 위험요소를 해결해야 했다. 그중 부패는 가장 큰 도전이었다. “부패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결국 당과 국가가 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신시대의 그 어떤 목표도 이룰 수 없다고 시진핑 총서기는 판단했다.

  2012년 12월 초, 제18기 중공중앙 후보위원에 당선된지 4개월도 채 되지 않은 리춘청(李春城) 쓰촨(四川)성 당위원회 부서기를 조사 처리한 것으로부터 시작해 반부패의 ‘첫 총소리’가 울렸다. 그 뒤로 거의 월마다 조사 처리된 중앙관리 간부가 나왔고 가장 많을 때 ‘한달에 호랑이 7마리’가 잡혔다. 시진핑이 실시한 강력한 정책은 중공 96년 역사에서 유례가 없었고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보기 드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4년 7월 말, 저우융캉(周永康) 중앙정치국 전 상무위원이 ‘엄중한 규율 위반’혐의로 입건 조사된 것은 역시 뜻밖이었다. 과거에 많은 중국인들은 중공이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급의 전임 고위 관직자를 조사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도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임 지도자가 이런 급의 ‘큰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능력과 기백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5년 이래, 저우융캉 외 보시라이(薄熙來), 궈보슝(郭伯雄), 쉬차이허우(徐才厚), 순정차이(孫政才), 링지화(令計畫) 등 사람들 안중의 ‘철모자왕(세습 특권층의 거물급 부패관리)’들이 반부패의 날카로운 검에 의해 잇따라 무너졌고 조사 처리된 18기 중공 중앙위원, 후보위원은 43명,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위원은 9명에 달했다.

  어떤 사람은 중공의 반부패가 ‘하우스 오브 카드’ 아닌가고 의문을 던졌다. 이에 시진핑은 “수백수천에 달하는 이들 부패분자에게 미움을 사지 않으면 13억 인민의 미움을 사게 된다”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은 반부패는 경제발전에 지장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시진핑은 “하늘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치열한 반부패에서 시진핑의 ‘릴레이 달리기’가 그렇게 순탄한 것이 아니라 ‘투쟁’에 직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쟁’이란 단어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빈번하게 19차 당대회에서 23번 언급되었다.

  2015년의 ‘교착상태’에서 2016년의 ‘압도적인 태세가 형성 중’, 지금의 중공 반부패는 ‘압도적인 태세가 이미 형성 및 공고하게 발전’하고 있다. 해외로 도주한 부패분자들은 큰 길을 가로 지르는 쥐와 같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고 국내에서는 많은 당원 간부들이 자기의 문제를 주동적으로 조직에 자백했다.

  “이제는 한숨 돌리고 쉬며 가자”는 일부 사람의 제안에 시진핑은 “이제 막 효과를 보기 시작했는데 수그러들면 절대 안된다”며 반부패 투쟁의 “압도적인 승리”를 요구했다.

  네티즌은 이런 만화 한 폭을 그렸다. 시진핑이 ‘큰 호랑이’의 등에 타고 주먹을 휘두르며 이 야수를 호되게 공격한다. 국가통계국의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당 기풍 정돈, 청렴한 정치, 반부패 등 업무에 대한 인민군중의 만족도는 이미 18차 당대회 전의 75%에서 2016년의 92.9%로 급등했다.

  시진핑이 인민들 속에서 높은 위신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호랑이 잡고’ ‘파리를 죽인’ 실적에 의존한 것이 아니다.

  2013년 초, 그는 신화사의 ‘네티즌, 요식업‘혀 끝의 낭비’저지 호소’란 자료를 보고 바로 “낭비 악습을 반드시 엄하게 단속할 것”을 지시했고 공금낭비 현상을 철저히 두절할 것을 강조했다. 5년 간 지속적인 노력 끝에, 중공은 많은 사람들이 통제 불가하다고 생각했던 나쁜 기풍을 바로 잡았다.

양샤오두(楊曉渡)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는 “인민군중은 공금에 의한 요식업 소비만 1년에 2천억 넘는데 무슨 수로 다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8항 규정’이 나오자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해결되었다고 봐야 한다”며 ‘8항 규정’은 중국을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시진핑의 “인민은 권력을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우리는 당과 조국에 헌신하고 당과 국가에 보답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잘못을 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그의 심리 변화 과정을 반영한 것이다.

욕화중생(浴火重生: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을 딛고 새롭게 태어난다). 당의 군중노선 교육실천활동에서 ‘삼엄삼실(三嚴三實)’ 주제 교육에 이르기까지, ‘양학일주(兩學一做)’ 학습교육에서 곧 개최될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명심하자’ 주제 교육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 이상과 신념은 ‘핵심 소수’에서 전체 당원에게로 확장되었다.

기율처분조례와 청렴자율준칙 일체 개정은 기율의 ‘마지노선’을 긋는데 도덕 ‘하이 라인’을 명시했다. 관계학, 후흑학, 관계술(官場術)에 열중하는 사람들은 세를 잃기 시작했다. 5년간 부처(副處)급 이상 ‘뤄관(裸官)’만 5천여 명을 정리했다. 지도간부의 승진과 강등을 규정한 ‘능상능하(能上能下)’ 규정에 근거해 현처(縣處)급 이상 간부 2만2천여 명을 조정했다.

2016년의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18기 6중 전회)는 시진핑을 중국공산당 당중앙의 핵심, 전 당의 핵심적인 지위로 올리기로 명확히 밝혔다. 여론은 중국공산당같이 하나의 당이 대국을 다스리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길에 많은 험난한 위험과 방해에 직면하는데 굳건한 지도핵심이 없다면 당 전체의 의지를 통합하기가 어렵고 전국 각 민족 인민의 단결통일을 이루어 내기도 어려워 어떠한 일도 해 낼 수 없고 인간 기적 창조나 “많은 새로운 역사적 특징을 지닌 위대한 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진핑의 두려움이 없는 전투정신은 그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독실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의 한 동료는 시진핑 주석의 연설은 “공산주의,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앙으로 가득 차 있다”는 내용의 글을 쓴 바 있다.

2012년 11월 29일 ‘부흥의 길’ 전시회 관람 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사상 정치교육전문가 박사학위를 가진 시진핑은 주동적으로 나서서 다른 중공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에게 천왕다오(陳望道)가 번역한 ‘공산당선언’ 중 먹물을 설탕물로 잘못 알고 마시고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전고(典故)를 설명하고 그의 말을 인용해 “진리의 맛은 아주 달다”고 말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그는 부모에게서 힘을 흡수했다. 부친 시중쉰(習仲勛)과 모친 치신(齊心)은 어렸을 때 혁명에 참가했다. 그는 부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설령 역경에 처해있더라도 “아버지의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은 여전히 확고부동하며 우리 당의 위대함, 정확함, 영광을 믿고 있습니다. 당신의 언행은 우리에게 정확한 전진방향을 제시합니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는 5,6세 때 어머니를 따라 ‘악비전(岳飛傳)’ ‘악모자자(岳母刺字)’ 등 이야기책을 사러 갔던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정충보국(精忠報國)’ 4글자를 그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기억하고 있는데 이 말은 내가 평생을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고 술회했다.

시진핑은 젊을 때 입단 신청서 8부, 입당 신청서 10부를 적었다. 그는 20살 때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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