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華網韓國語 >> 기사 본문
관광객이 란카오(蘭考) 자오위루(焦裕祿)간부학원 문앞의 ‘자오퉁(焦桐)’ 밑에서 걸어가고 있다(2017년 8월 9일 촬영). 사람들은 그 당시 자오위루가 친히 심은 이 오동나무를 ‘자오퉁’이라고 불렀다. 허난 란카오(河南蘭考)는 자오위루정신의 발원지이다. 50여년 전, 자오위루는 란카오 인민을 거느리고 풍사, 알칼리성 토양, 침수재해 이 3가지 재해와 맞서 싸웠다—이 3가지 재해는 자오위루가 대량의 조사연구를 통해 얻어낸, 란카오가 빈곤할 수 밖에 없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개혁개방 후, ‘3가지 재해’는 란카오의 과거사로 남았지만 빈곤은 줄곧 현지 주민의 머리를 짓누르는 ‘하나의 큰 산’이었다. 2002년, 란카오는 국가급 빈곤현으로 정해졌다.
최근 몇년 간, 란카오는 빈곤퇴치 공격전을 가장 중요한 대사와 가장 중요한 민생공정으로 간주하면서 빈곤퇴치 공격전으로 경제사회 발전의 전체 국면을 통괄하고 산업 발전의 관건을 잘 파악했다. 또한, 도시와 농촌의 전면적인 발전을 가속화시키고 개혁과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진정 빈곤한 사람을 구제, 실질적인 빈곤구제 조치 실시, 확실한 빈곤퇴치 등을 확실하게 이행했다. 2017년 3월, 란카오는 허난성에서 가장 먼저 빈곤 ‘모자’를 벗은 빈곤현으로 되었다. 개혁개방 40년, 과거의 ‘가난한 란카오’에서 오늘의 ‘아름다운 삶의 터전’으로 변신한 란카오는 빈곤 모자를 벗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단단해졌고 한 지방현이 발전하는 길을 모색해 냈으며 개방·혁신 속에서 샤오캉(小康)으로 달려갔다. [촬영/ 신화사 기자 펑다펑(馮大鵬)]
원문 출처: 신화사
추천 기사:
핫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