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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4월~1942년 1월, 1943년 2월~12월, 1945년 1~7월 그는 푸진현(富锦县) 등 지역에서 “중국침략 일본 위안소를 감독하고 감시하는 일을 했다. 30여 명 조선 여성(20세부터 30세 사이)을 노예로 간주하고 그들의 자유를 박탈했으며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강간하도록 협조했다. 매 주 그들의 음부를 검사하고 조사 결과를 침략군(일본군)에게 통지했다. 조선 여성들이 성병으로 인해 커다란 고통을 받게 했다.”
전범 아즈마 이치헤이는 1954년 6월 26일 서면 자백서에서 일본군 둥닝 헌병대장을 맡은 적 있다고 자백했다.
1941년 8월 무단장성 둥닝현(东宁县)에서 “관동군사령부의 명령을 받고 ‘군위안소’를 설치했다”, “중국인 민가를 ‘위안소’로 사용했고 조선인 김씨가 데리고 온 조선인 여성 30명을 강제로 영업하게 했다. 이곳을 점령한 일본부대 군인, 군무원 4000명의 강간, 구타, 폭행대상이 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