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사진)
[신화사 서울 9월 14일] 한국 인천시립박물관 마당에는 중국의 송, 원, 명나라 시기의 대형 범종(梵鐘) 3개가 전시되어있다. 중국의 사원에 걸려 신도들의 독경, 명복 기원에 사용되어야 할 범종들이 어떻게 바다건너 한국 인천에 자리를 잡았을까? 그 배후에는 어떤 역사적인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까?
3개의 거대한 중국 주철 범종은 어떻게 바다건너 인천으로 유입됐을까? 박물관 사업인원은 기자에게 대형 종 외에도 인천시립박물관에는 중국 명나라의 청동 관음보살 좌상 및 청나라의 두 향로 등이 소장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중국 문물의 유래는 일본이 조선 반도를 침략한 역사와 갈라놓을 수 없다.
지난 세기 초 조선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1940년을 전후하여 일본인들은 인천 부평지역에 육군 병기 공장 하나를 세웠다. 1942년, 일본이 발동한 태평양전쟁이 가장 치열하게 치뤄지던 시기 전략물자가 심하게 부족하자 전쟁 수요로 일본군은 조선반도, 심지어 중국에서 대량의 구리, 철류 문물을 병기 공장으로 약탈해갔다. 그러나 일본군이 이 문물들을 쇠로 녹이기도 전인 1945년 8월, 일본이 투항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