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사진)
70여년 전의 한차례 전쟁이 이들 및 수천만 일반인의 운명이 엇갈리게 했고 중국 나아가 세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 몇해간 내 평생의 전쟁을 전부 치뤘네.” 올해 98세인 후리둥(胡利東)이 이같이 말했다. 101세인 장정궈(張正國)는 “그때 당시 전투에서 죽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좋은 세월도 못봤겠지”라고 감탄했다.
백산흑수(중국의 동북 지방)에서 장성 내외까지: 반파시즘 전쟁의 첫 총성 울리다
중국의 동북에서 1931년 9월 18일, 일본군이 선양(沈陽)을 침략한 뒤 동북삼성을 점령했다.
왕지엔랑(王建朗)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은 파시즘 대외 침략 전쟁의 첫번째 전화에 불을 붙였고 중국 인민은 반파시즘 전쟁의 첫 총성을 울렸다.”
1932년, 일본이 상하이(上海)에서 사단을 일으켰고 숭후(松湖)항전이 폭발했다.장광나이(蔣光鼐) 19로군 총지휘가 《제19로군이 일본군 국경 침범에 관해 전송하는 통전(第十九陸軍為日軍犯境通電)》을 발송한 뒤 사병들을 거느리고 저항했다, “한사람, 총탄 한알이 남을 때까지 희생이 지속되더라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중화민국 군인의 인격을 잃지 않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북에서도 항일의 총성이 울렸다. 1933년 3월부터 5월 사이중국 군부대가 장성 라인에서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에 반격했다.
1933년, 장정궈가 참군했고 3년 뒤 후리둥이 입대했다.
루거우(盧溝) 봉화에서 백퇀대전까지: 중국의 고군분투
1937년 7월 7일, 루거우차오 사변은 중화민족의 전면 항전의 시작을 상징한다.
2년 뒤 독일이 폴란드를 기습했고 2차 대전이 전면적으로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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