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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주 전장: 인류가 파시즘에 반격한 동방의 기억

출처 :  신화망 한국어판 | 2015-09-02 16:16:28  | 편집 :  필추란

   항전 승리 70주년을 앞두고 중국 정부 측에서 한조의 통계 데이터를 발부했다:

   ——일본 투항 전야 중국 전장의 병력은 186만명으로 그 해외 총병력의 50% 이상을 차지했다;

   ——중국군은 일본군 150여만명을 격살, 포로했다;

   ——중국 군민 사상자수는 3500만명 이상에 달하며 그중 군부대 사상자가 380여만명으로 각 국 사상자 총수의 3분의 1에 달한다;

   ——1937년의 가격으로 비교해보면 중국 정부의 재산 손실과 전쟁 소모는 1000여억달러에 달했고 간접적인 경제손실은 5000억달러에 달했다.

   전후 중국은 유엔 5개 상임이사국 중의 하나가 되었다.

   곧이어 중국에는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고 신속하게 발전했다.

   2008년, 베이징—전면 항전이 시작된 곳에서 중국은 처음으로 올림픽을 개최했다.

   2010년, 상하이—중국 군이 두차례 일본군과 고군분투한 전장에서 중국은 처음으로 엑스포를 개최했다.

   바로 이 해 중국의 경제 총량이 일본을 초과해 세계 제2대 경제체로 부상했다.

   장정궈의 아들은 늘 그에게 국가대사를 이야기해준다. 후리둥은 그와 함께 참군한 3명의 목동을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그들 중 둘은 항전에서 희생됐다.

   후리둥은 눈시울을 붉히였다. “난 이제 늙었고 움직이기도 불편하다. 몸만 따라준다면 더 많이 둘러보고 싶고 장즈중 사령 기념당에 가 참배하고 그들과 그때 당시의 일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글/신화사 기자 바이쉬(白旭), 밍싱(明星), 머우쉬(牟旭) 참여기자 왕하이잉(王海鷹), 위안후이징(袁慧晶), 스린징(史林靜), 런리잉(任麗穎), 리우샹샤오(劉翔霄), 리윈루(李雲路), 쉬샤오칭(許曉青), 차이민(蔡敏)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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